가요무대 1966회 선곡을 따라가니 고향이 남았다

얼마 전 가요무대 1966회 선곡표를 보다가 ‘신토불이’ 다음에 ‘흙에 살리라’가 놓인 순서에서 잠깐 멈췄어요. 9월의 마지막 월요일에 땅과 고향을 노래하는 두 곡이라니, 시작부터 계절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이번 회차는 2026년 9월 28일 방송된 ‘9월 신청곡’ 편입니다. KBS 다시보기 기준으로 52분 48초 동안 15명의 가수가 한 곡씩 들려줍니다.
가요무대에는 드라마처럼 뒤집히는 줄거리가 없죠. 대신 곡의 순서가 그날의 분위기를 만듭니다. 이번에는 오래된 가요 사이에 귀에 익은 신나는 노래가 들어가 있어서, 차분히 듣다가도 어느 순간 박자를 타게 되는 구성이에요. 아래에는 무대 순서와 곡명을 적었으니, 선곡을 미리 알고 싶지 않다면 목록은 건너뛰어도 좋습니다.
첫 두 곡에서 잡히는 9월의 분위기
배일호가 자신의 노래 ‘신토불이’로 문을 열고, 강문경이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를 이어 부릅니다. 제목만 나란히 놓아도 땅이라는 공통점이 선명하죠. 그래서 저는 이 시작이 꽤 마음에 들었어요. 신청곡 특집은 자칫 곡마다 따로 노는 느낌이 들 수 있는데, 첫 두 곡이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듯하니까 다음 노래로 넘어가기가 자연스럽습니다.
그 뒤에는 윤태화의 ‘용두산 엘레지’, 김성환의 ‘고향 무정’이 이어집니다. 부산의 지명과 고향이라는 말이 연달아 등장하니 노래가 품은 장소가 또렷해져요. 추석 기획 ‘고향 가는 길’이었던 직전 1965회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다만 1966회는 한 가지 이야기를 길게 끌기보다, 신청곡마다 다른 사람의 기억을 잠깐씩 들여다보는 쪽에 가까워 보입니다.
15곡의 순서를 보면 감정의 폭이 꽤 넓다
가수와 선곡을 함께 보고 싶은 분을 위해 방송 순서대로 적어둘게요. 원곡을 부른 가수와 이번 무대의 가수가 같은 곡도 있고, 다른 목소리로 다시 만나는 곡도 있습니다.
- 배일호 ‘신토불이’, 강문경 ‘흙에 살리라’, 윤태화 ‘용두산 엘레지’
- 김성환 ‘고향 무정’, 지원이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김용임 ‘눈물의 연평도’
- 임찬 ‘번지 없는 주막’, 배아현 ‘비 내리는 고모령’, 박주희 ‘자기야’
- 강유진 ‘영원한 친구’, 조명섭 ‘잘 있거라 부산항’, 빈예서 ‘한 많은 대동강’
- 박상철 ‘울고 넘는 박달재’, 서지오 ‘돌리도’, 태진아 ‘사모곡’
목록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장소예요. 연평도와 부산항, 대동강과 박달재까지 노래 속 지명이 여럿 나옵니다. 사랑이나 이별을 노래해도 배경이 구체적이니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지죠. 반면 박주희의 ‘자기야’, 강유진의 ‘영원한 친구’, 서지오의 ‘돌리도’는 제목부터 훨씬 경쾌합니다. 그리운 노래만 계속될 거라고 예상했다면 중간중간 분위기가 달라지는 점이 반가울 수 있어요.
제가 눈여겨본 건 오래된 노래를 부르는 새 목소리
이번 선곡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조합은 조명섭의 ‘잘 있거라 부산항’과 빈예서의 ‘한 많은 대동강’이에요. 둘 다 제목에 장소가 들어가지만, 지명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한 곡은 떠나는 항구를, 다른 한 곡은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을 생각하게 하거든요. 같은 ‘그리움’으로 묶어 넘기기엔 결이 달라서 두 무대를 이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김용임의 ‘눈물의 연평도’와 배아현의 ‘비 내리는 고모령’도 관심이 갑니다. 이런 노래는 멜로디만 익숙해서 무심코 듣다가, 가수가 어느 대목을 길게 끌고 어디서 담백하게 넘기는지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더라고요. 원곡을 잘 아는 시청자라면 자연히 비교하게 될 테고, 처음 듣는 시청자라면 지금 무대의 목소리로 곡을 기억하게 되겠죠. 세대가 다른 가수들이 오래된 노래를 맡는 가요무대의 매력이 여기 있습니다.
흥겨운 노래를 기다린다면 중간과 후반에
솔직히 느린 노래가 연달아 나오면 조금 처진다고 느끼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번 순서에서는 박주희의 ‘자기야’와 강유진의 ‘영원한 친구’가 반갑습니다. 앞서 고향과 이별을 따라왔다면 이 대목에서 숨을 고를 수 있겠죠. 후반에는 서지오의 ‘돌리도’도 기다리고 있고요. 신나는 무대만 골라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세 곡부터 찾게 될 것 같습니다.
반대로 가요무대 특유의 묵직한 여운을 좋아한다면 마지막 태진아의 ‘사모곡’까지 보는 편이 좋겠어요. ‘돌리도’ 다음에 ‘사모곡’이 놓인 순서가 흥을 올린 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니까요. 취향은 갈릴 수 있습니다. 저는 한 분위기로만 밀고 가는 편보다 이런 굴곡이 있는 편성이 덜 단조롭습니다. 가요무대 1966회는 좋아하는 가수의 한 곡을 찾아보기에도 좋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곡 사이의 온도 차이를 느끼며 듣고 싶은 회차예요. 다 듣고 나면 제게는 신나는 후렴보다도 처음의 ‘흙’과 마지막의 ‘사모’가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