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 1500회까지 따라가봤더니, 오래 보는 프로그램은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 주말 밤에 밀린 회차를 몰아서 보다가 문득 회차 숫자를 다시 봤다. 그것이 알고 싶다 1500회. 드라마도 시즌 3만 넘어가면 세계관 유지가 쉽지 않은데, 시사·탐사 프로그램이 1500회라는 숫자까지 왔다는 건 그냥 장수 프로그램이라는 말로는 조금 부족하다.
사실 저는 ‘그알’을 매주 본방으로 챙기는 타입은 아니다. 어떤 편은 너무 무거워서 며칠 묵혔다가 보고, 어떤 편은 예고편 한 줄만 보고도 바로 틀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중간에 끊기가 어렵다. 사건을 소비한다기보다, 우리가 놓친 질문을 하나씩 다시 꺼내는 방식이라서 그렇다.
1500회라는 숫자가 주는 묘한 무게
SBS에서 1992년부터 이어진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1500회는 단순한 기념 숫자가 아니다. 30년 넘게 한국 사회의 범죄, 미제 사건, 종교, 권력, 제도, 가족 문제를 따라온 기록에 가깝다. 그 사이 진행자도 바뀌었고, 시청 방식도 TV 본방 중심에서 다시보기와 짧은 클립 중심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프로그램의 기본 감각은 꽤 꾸준하다.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지점을 끝까지 붙든다.
저는 이 점이 그알의 가장 큰 힘이라고 본다. 보통 사건 보도는 발생, 수사, 재판, 선고 흐름으로 흘러가는데, 그알은 그 사이에 남는 빈칸을 오래 들여다본다. 진술이 왜 바뀌었는지, CCTV가 없는 시간대에 무엇이 있었는지, 주변 사람들의 말이 왜 조금씩 어긋나는지 같은 부분이다. 드라마로 치면 복선 회수의 재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실제 사람의 삶이 걸려 있다는 점에서 긴장감이 훨씬 세다.
정주행할 때 더 잘 보이는 그알식 구성
그것이 알고 싶다를 한 편씩 따로 보면 사건의 충격이 먼저 들어온다. 그런데 여러 회차를 이어서 보면 제작진이 반복해서 쓰는 구성 방식이 보인다. 초반에는 시청자가 가장 궁금해할 만한 의문을 던지고, 중반에는 관계자 인터뷰와 자료를 쌓아 올린다. 후반으로 갈수록 처음의 질문이 조금 다른 질문으로 바뀐다. ‘누가 그랬나’에서 ‘왜 이 일이 여기까지 왔나’로 넘어가는 식이다.
이 방식은 호불호가 있다. 몰입감은 강하지만, 때로는 음악과 재연 장면이 긴장을 크게 끌어올린다는 느낌도 든다. 특히 피해자가 있는 사건에서는 그 연출이 조심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고, 반대로 시청자가 사안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게 잡아주는 장치로 보일 때도 있다. 솔직히 저는 편마다 다르게 느낀다. 어떤 회차는 연출이 과하다고 느꼈고, 어떤 회차는 그 정도의 밀도가 있어야 사람들이 끝까지 본다고 생각했다.
스포 없이 보는 관전 포인트
1500회 전후의 그알을 볼 때는 사건의 반전만 기다리기보다, 질문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보는 쪽이 더 재미있다. 범인이 누구냐, 진실이 뭐냐 같은 단일한 답만 붙잡으면 중간 과정이 조금 답답할 수 있다. 하지만 증언, 자료, 시간표, 이해관계가 어떻게 엮이는지 따라가면 훨씬 촘촘하게 보인다.
- 첫째, 초반 내레이션이 던지는 질문을 기억해두면 좋다. 후반에 그 질문이 그대로 유지되는지, 다른 방향으로 바뀌는지가 중요하다.
- 둘째, 인터뷰이의 말투보다 말이 놓인 맥락을 보는 편이 낫다. 그알은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기억과 입장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 셋째, 제작진이 보여주는 숫자와 날짜를 놓치지 않는 게 좋다. 통화 시간, 이동 거리, 사건 발생 시각 같은 정보가 분위기보다 더 많은 걸 말할 때가 있다.
- 넷째, 방송이 답을 다 줬다고 생각하지 않는 태도도 필요하다. 그알의 매력은 확정 판결문처럼 닫히는 데 있지 않고, 남은 의문을 시청자 앞에 놓는 데 있다.
호불호 갈리는 지점도 분명하다
오래 본 사람일수록 그알에 기대하는 기준이 높다. 그래서 어떤 편은 “역시 그알답다”는 반응을 얻고, 어떤 편은 “이미 알려진 내용을 길게 반복한 느낌”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건 장수 프로그램의 숙명에 가깝다. 1500회쯤 되면 시청자도 웬만한 구성에는 익숙해져서, 새로움보다 취재의 깊이를 더 따지게 된다.
또 하나는 감정선이다. 사건의 피해와 억울함을 전하는 과정에서 시청자 감정을 움직이는 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선이 너무 진해지면 탐사보다 감정 호소가 앞서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저는 그알이 가장 좋을 때가, 눈물보다 자료가 먼저 말을 하고 인터뷰가 그 뒤를 받칠 때라고 느낀다. 차갑게 쌓은 사실 위에 감정이 따라올 때 훨씬 오래 남는다.
추천 대상과 비추천 대상
그것이 알고 싶다 1500회를 검색해서 들어온 사람이라면 아마 두 부류일 것 같다. 오래 본 시청자라서 기념비적인 회차가 궁금한 사람, 혹은 최근 화제 때문에 처음 제대로 보려는 사람. 전자라면 1500회 자체보다 그 전후 회차의 흐름까지 이어서 보는 쪽이 만족도가 높다. 후자라면 너무 자극적인 사건부터 시작하기보다 사회적 구조가 함께 보이는 편을 먼저 보는 게 덜 지친다.
다만 잠들기 직전에 보는 건 개인적으로 비추천이다. 사건 내용이 무겁고, 실제 인물의 고통이 등장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저는 예전에 밤 12시에 한 편 틀었다가 관련 기사와 판결 흐름까지 찾아보다가 새벽 3시가 된 적이 있다. 재미있어서라기보다 마음이 쉽게 꺼지지 않아서였다.
그래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
그알은 편하게 소비하기 좋은 프로그램은 아니다. 보고 나면 기분이 산뜻해지는 종류도 아니다. 그런데도 계속 보게 되는 건, 세상이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사건들을 다시 붙잡아두기 때문이다. 1500회라는 숫자는 제작진만의 기록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이런 질문을 아직 필요로 한다는 표시처럼 보인다.
드라마나 예능 정주행은 보통 캐릭터와 웃음, 감정선이 남는다. 그런데 그것이 알고 싶다를 이어서 보면 질문이 남는다. 누가 침묵했는지, 어떤 제도가 비어 있었는지, 왜 누군가는 너무 늦게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 저는 그 불편함이 이 프로그램을 오래 보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1500회까지 온 프로그램이라면, 이제는 사건 하나의 강도보다 질문을 오래 버티는 태도를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