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역사문화축전, 예능 한 회 보듯 걸어봤더니 익산 골목이 꽤 진하게 남았다

얼마 전 익산 중앙동 쪽을 지나가다 근대 건물과 오래된 골목 분위기가 묘하게 드라마 세트장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낡은 풍경이 아니라, 누가 어느 골목에서 뛰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이야기가 붙어 있는 공간이더라고요. 그래서 근대역사문화축전이라는 키워드를 보자마자 저는 여행 정보보다 먼저 “이거 관전 포인트가 많은 행사겠는데?” 싶었습니다.
근대역사문화축전은 익산의 근대문화유산을 배경으로 열리는 역사문화 행사입니다. 2026년 행사는 6월 6일부터 7일까지 이틀 동안 익산 문화예술의 거리 일대, 솜리문화의 숲, 항일독립운동기념관 주변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주제도 ‘익산의 시간을 거닐다’라서 제목부터 살짝 서사형입니다. 입장료가 무료라는 점도 진입장벽을 확 낮춰줍니다.
익산 골목이 무대가 되는 느낌
이 축전의 재미는 넓은 광장 하나에 부스를 몰아넣는 방식이 아니라, 골목과 거점을 따라 움직이게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드라마로 치면 한 장소에서만 대사가 이어지는 게 아니라, 인물들이 골목, 기념관, 거리, 숲을 오가며 장면을 바꾸는 구성에 가깝습니다.
특히 익산 문화예술의 거리 일대는 이름만 들으면 조용한 산책 코스 같지만, 축제 기간에는 스탬프 투어와 체험 프로그램이 얹히면서 꽤 적극적인 참여형 무대가 됩니다. 관람객이 그냥 보는 사람이 아니라 미션을 따라 움직이는 출연자처럼 되는 거죠. 예능으로 치면 ‘동네 한 바퀴’에 역사 미션이 붙은 버전입니다.
이런 행사는 동선이 은근 중요합니다. 너무 빽빽하면 체험은 많은데 피곤하고, 너무 헐거우면 기억에 남는 장면이 줄어듭니다. 근대역사문화축전은 여러 거점을 활용하는 쪽이라 천천히 걸으며 분위기를 보는 사람에게 잘 맞고, 짧은 시간에 모든 걸 찍고 가려는 타입에게는 약간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관전 포인트는 ‘체험’보다 ‘맥락’
프로그램만 보면 경성의복 체험, 스탬프 투어, 역사 미션, 플래시몹, 변사극, 시대별 공연처럼 꽤 익숙한 축제 메뉴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체험 자체의 신기함보다, 왜 이 장소에서 이런 체험을 하는지가 붙을 때 생기는 밀도입니다.
예를 들어 경성의복 체험은 사진 찍기 좋은 콘텐츠로만 소비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익산의 근대사, 6·10만세운동의 기억, 독립운동 관련 공간과 이어서 보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예쁜 옷을 입고 인증샷을 남기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시절의 거리감과 현재의 내가 잠깐 겹쳐지는 순간이 생깁니다.
변사극도 꽤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요즘 콘텐츠가 워낙 빠르고 자극적이다 보니 무성영화와 변사의 말맛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근데 그 낯섦이 장점이 될 때가 있어요. 빠르게 넘기는 숏폼과 정반대의 리듬이라, 처음엔 어색해도 조금만 앉아 있으면 “아, 예전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었겠구나” 하는 감각이 옵니다.
- 사진 위주로 즐기는 사람: 경성의복 체험과 거리 풍경이 잘 맞음
- 아이와 함께 가는 사람: 미션형 프로그램과 스탬프 투어가 접근성이 좋음
- 역사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 항일독립운동기념관 주변 동선까지 보는 쪽이 만족도 높음
-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 변사극과 시대별 주제 공연을 시간표 중심으로 잡는 게 유리함
호불호가 갈릴 만한 부분
솔직히 말하면 이런 역사문화축전은 취향을 탑니다. 놀이기구가 있는 축제도 아니고, 먹거리 장터만 보고 움직이는 행사도 아닙니다. ‘재밌다’의 기준이 화려한 볼거리라면 다소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공간의 분위기, 오래된 거리, 지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됩니다.
또 하나는 날씨입니다. 6월 초 행사는 낮에 걸어 다니면 제법 덥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는 일정이라면, 한낮에 모든 동선을 몰아넣기보다는 오전이나 늦은 오후 중심으로 움직이는 편이 좋습니다. 역사 미션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지만, 더위가 심하면 집중력이 빨리 떨어지거든요.
프로그램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는 점도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골목을 걸으며 발견하는 맛은 있는데, 행사장 구조를 미리 모르면 “어디부터 가야 하지?” 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축제는 입구에서 가장 먼저 안내도와 시간표를 확인하는 편을 추천합니다. 특히 변사극이나 플래시몹처럼 시간이 정해진 콘텐츠는 지나가다 우연히 보는 것보다 맞춰서 보는 쪽이 훨씬 낫습니다.
드라마처럼 보면 더 재밌는 장면들
근대역사문화축전을 드라마·예능 리뷰어 시선으로 본다면, 첫 번째 장면은 거리입니다. 세트가 아니라 실제 장소라는 점이 힘을 갖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사람입니다. 경성의복을 입은 관람객, 미션지를 들고 뛰는 아이들, 공연 앞에 멈춰 선 어른들이 한 화면에 들어오면 지역 축제 특유의 생활감이 생깁니다.
세 번째 장면은 기억입니다. 근대라는 단어는 어쩐지 교과서 단원처럼 딱딱하게 느껴지지만, 현장에서 걸으면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누군가에게는 독립운동의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도시가 바뀌어 온 흔적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사진을 남기는 하루입니다. 같은 공간을 두고 여러 층위의 감상이 생기는 게 이 행사의 가장 좋은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축전이 더 커지려면 ‘예쁜 복고’와 ‘역사의 무게’ 사이 균형을 잘 잡는 게 중요해 보입니다. 복고 감성만 앞서면 가벼워지고, 역사 설명만 길어지면 축제가 아니라 수업처럼 느껴집니다. 지금의 방향은 참여형 콘텐츠로 문턱을 낮추고, 공간을 걸으며 맥락을 만나게 하는 쪽이라 꽤 영리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특히 잘 맞는다
근대역사문화축전은 하루를 꽉 채워 떠나는 대형 여행보다, 익산을 천천히 걷는 반나절 코스로 잡았을 때 매력이 살아납니다. 문화예술의 거리에서 시작해 솜리문화의 숲, 근대역사 관련 공간으로 이어지는 식으로 움직이면 정보와 산책의 균형이 괜찮습니다.
가족 단위라면 아이가 지루해하지 않도록 미션형 프로그램을 먼저 넣고, 어른들은 공연과 전시형 공간을 섞는 방식이 좋습니다. 커플이나 친구끼리라면 경성의복 체험과 거리 사진을 중심으로 잡아도 무난합니다. 혼자 가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더 좋을 수 있습니다. 혼자 걸을 때 오래된 건물과 설명판이 더 잘 들어오거든요.
근대역사문화축전은 엄청난 반전이나 폭발적인 엔딩이 있는 행사는 아닙니다. 대신 조용히 따라 걷다 보면 익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시간의 층이 보입니다. 저는 이런 축제가 지역마다 조금 더 자주, 조금 더 세심하게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시끄럽게 소비하고 끝나는 하루보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골목 분위기 괜찮았지” 하고 한 번 더 떠올리는 쪽이 오래 남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