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즈미의 첫사랑을 밤새 읽어봤더니, 로맨스보다 생존기가 먼저 보였다

얼마 전 가볍게 한두 권만 읽으려고 펼쳤다가, 생각보다 손이 오래 멈췄습니다. 제목만 보면 풋풋한 첫사랑물 같은데, 막상 들어가면 단맛보다 피 냄새가 먼저 올라오는 작품이더라고요. 네즈미의 첫사랑은 오오세토 리쿠의 만화로, 한국판은 학산문화사를 통해 출간되고 있습니다. 2026년 8월 기준 국내 단행본은 7권까지 확인되고, 일본 쪽 연재는 더 앞서 나가 있는 상태라 뒤 이야기를 기다리는 맛도 꽤 큽니다.
제목은 말랑한데 분위기는 꽤 세다
이 작품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야쿠자에게 살인자로 길러진 소녀 네즈미가, 평범한 청년 아오를 만나 사랑을 배우기 시작한다는 이야기예요. 여기까지만 들으면 ‘상처 많은 소녀를 구원하는 순정 로맨스’처럼 보일 수 있는데, 실제 감상은 훨씬 거칠고 불편합니다.
네즈미는 사랑을 몰라서 서툰 정도가 아니라, 인간적인 감정의 기본값 자체가 망가진 채 살아온 인물입니다. 그래서 아오와의 동거 장면이 귀엽게 보이다가도, 바로 다음 순간에는 이 평온이 얼마나 얇은 종이 위에 놓여 있는지 느껴집니다. 드라마로 치면 멜로 장면 뒤에 바로 범죄 스릴러 컷이 붙는 느낌이에요.
공식 소개에서도 이 작품은 ‘살인자 소녀의 극한 러브스토리’에 가까운 방향으로 소개됩니다. 실제로 읽어보면 로맨스, 액션, 서스펜스가 한 덩어리로 묶여 있고, 귀여운 장면과 잔혹한 장면의 간격이 짧습니다. 이 간격 때문에 호불호가 꽤 갈릴 만합니다.
네즈미와 아오, 이 커플을 응원하게 되는 이상한 힘
네즈미는 말수가 많거나 감정을 크게 터뜨리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래서 더 눈이 갑니다. 사랑을 처음 배운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 어색한 표정과 행동이 장면마다 묘하게 아프게 박혀요.
아오는 이 작품에서 ‘평범함’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다만 그 평범함이 마냥 안전하거나 순진하게만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네즈미의 세계로 끌려 들어가면서 아오 역시 계속 선택을 강요받거든요. 둘의 관계는 달달한 커플 서사라기보다, 서로에게 남은 생활감 같은 것에 가깝습니다.
- 네즈미는 사랑을 배우지만, 과거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 아오는 네즈미를 좋아하지만, 그 사랑이 감당 가능한 일인지 계속 시험받습니다.
- 둘이 함께 있는 장면은 귀엽지만, 독자는 계속 불안을 안고 보게 됩니다.
이 지점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둘이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작품의 세계가 그걸 허락할 리 없다는 예감이 계속 따라와요. 그래서 평범한 밥상, 데이트, 같이 있는 밤 같은 장면들이 오히려 더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잔혹함은 장식이 아니라 감정의 압력이다
솔직히 말하면, 잔혹한 장면에 약한 사람에게는 추천하기 조심스럽습니다. 레진코믹스에서도 19세 이용가로 분류되어 있고, 키워드 역시 잔혹함, 고어, 복수, 액션 쪽 색이 강하게 붙어 있습니다. 단순히 분위기만 어두운 정도는 아니에요.
그런데 이 폭력성이 그냥 자극용으로만 쓰인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네즈미가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졌는지, 아오와의 사랑이 왜 평범한 연애가 될 수 없는지 보여주는 압력으로 작동합니다. 그래서 읽는 동안 ‘왜 이렇게까지 세게 가나’ 싶다가도, 어느 순간 네즈미가 평온한 표정을 지을 때 더 마음이 쓰입니다.
다만 이 방식이 모두에게 잘 맞지는 않을 겁니다. 귀여운 그림체나 첫사랑이라는 단어에 기대어 들어온 독자라면 당황할 수 있어요. 반대로 로맨스에 범죄 스릴러의 긴장감이 섞인 작품을 좋아한다면 꽤 강하게 붙잡힐 가능성이 큽니다.
드라마처럼 본다면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자꾸 영상화된 장면을 상상하게 됐습니다. 특히 네즈미가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컷과, 아오가 그 침묵을 받아들이는 장면들이 드라마였다면 배우의 눈빛 싸움으로 꽤 세게 나왔을 것 같거든요.
- 첫째, 일상 장면의 불안감입니다. 둘이 편하게 웃는 장면일수록 다음 장면이 무서워집니다.
- 둘째, 네즈미의 감정 변화입니다. 큰 대사보다 작은 반응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 셋째, 조직과 과거의 압박입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위험도 같이 가까워지는 구조가 팽팽합니다.
특히 초반부는 속도가 빠른 편입니다. 설정을 오래 설명하기보다, 네즈미와 아오를 바로 붙여놓고 관계를 밀어붙입니다. 그래서 입문 장벽은 낮은데, 감정적으로는 가볍지 않습니다. 한 권만 읽고 덮기보다 두세 권을 이어 읽었을 때 작품의 리듬이 더 잘 보입니다.
취향은 탈 수 있지만, 남는 맛은 확실하다
네즈미의 첫사랑은 예쁜 사랑 이야기만 기대하면 꽤 매운 작품입니다. 대신 사랑을 처음 알게 된 사람이 그 감정을 지키려고 할 때 얼마나 처절해지는지, 그 부분을 아주 선명하게 밀어붙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 작품을 순정 로맨스보다 ‘사랑을 배운 살인자의 생존극’으로 읽는 쪽이 더 맞았습니다.
호불호 포인트도 분명합니다. 잔혹한 묘사, 어두운 조직 서사, 불안한 전개를 싫어한다면 피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달달함과 잔인함이 한 페이지 안에서 충돌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이 작품은 꽤 오래 머리에 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네즈미와 아오가 행복해지는 장면을 보고 싶으면서도, 이 작품이 쉽게 그런 안도감을 줄 것 같지는 않아서 계속 마음을 졸이게 됩니다. 참 이상하죠. 위험한 이야기인 걸 알면서도, 두 사람이 아주 평범하게 밥 먹고 웃는 장면 하나를 더 보고 싶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