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록절 2026을 예능 보듯 따라가봤더니 남은 건 홍대식 우정이었다

얼마 전 음악 예능 클립을 보다가 문득 경록절 2026 라인업을 다시 찾아봤는데, 이건 그냥 공연 소식이라기보다 한 편의 장기 예능 시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년 2월이면 슬쩍 이름이 올라오고, 아는 사람은 이미 들떠 있고, 모르는 사람은 “경록절이 대체 뭐야?” 하다가 어느 순간 빠져드는 그 분위기요.
경록절은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 한경록, 그러니까 캡틴락의 생일 파티에서 출발한 홍대 인디 음악 축제입니다. 2026년에는 ‘경록절 로큰롤 다이너마이트 with 29CM 스테이지’라는 이름으로 2월 19일과 20일, 서울 홍대 무신사 개러지에서 열렸습니다. 첫날은 유료 기획 공연, 둘째 날은 선착순 무료 입장 형식의 경록절 클래식으로 진행됐고, 생중계까지 붙으면서 현장감과 접근성을 같이 챙긴 구성이었죠.
생일 파티가 축제가 된 이상한 성장기
사실 경록절의 재미는 시작부터 좀 독특합니다. 거대한 기획사가 “페스티벌 하나 만들어야겠다” 하고 만든 행사가 아니라, 한 뮤지션의 생일에 동료들이 모이고, 먹고 마시고, 그러다 음악이 터져 나온 자리에서 커졌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2000년대 중반 작은 생일 파티로 시작해 20년 넘게 이어졌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서사예요.
드라마로 치면 주인공 한 명의 생일 에피소드가 시즌 전체를 관통하는 세계관으로 커진 느낌입니다. 그런데 억지로 감동을 밀어 넣지 않습니다. 경록절은 늘 “우리 재밌게 놀자”에서 출발하는데, 이상하게 그 가벼움이 오래 남습니다. 크라잉넛이 가진 펑크 에너지, 홍대 라이브클럽 문화, 선후배 뮤지션의 느슨한 연대가 다 섞여 있어서 그렇습니다.
2026 라인업에서 보인 관전 포인트
2026년 경록절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세대와 장르의 폭이었습니다. 크라잉넛은 당연히 중심에 있고, 김종서, 비비, 터치드, 심현희, 스킵잭, 차승우와 사촌들, 초록불꽃소년단 같은 이름들이 함께 언급됐습니다. 이 조합이 재밌는 이유는 단순히 유명한 사람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록의 선배, 현재 대중음악의 얼굴, 인디 신의 팀들이 같은 판에 섞였다는 점이 포인트입니다.
예능으로 비유하면 섭외 밸런스가 꽤 좋았습니다. 터줏대감만 모아두면 향수 파티가 되고, 신인만 모아두면 검색을 계속해야 해서 진입 장벽이 생기거든요. 그런데 경록절 2026은 “아는 얼굴로 들어와서 모르는 팀을 발견하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저는 이런 구성이 제일 좋습니다. 팬 입장에서는 익숙해서 편하고, 동시에 새 이름을 건져갈 확률도 높으니까요.
- 첫째 날: 유료 기획 공연으로 밀도 있는 팬층을 겨냥한 구성
- 둘째 날: 선착순 무료 입장 경록절 클래식으로 축제성 강화
- 온라인 생중계: 현장에 못 간 사람도 분위기를 따라갈 수 있는 장치
- 라인업 색깔: 펑크, 록, 인디, 대중음악의 접점이 넓게 배치됨
나 혼자 산다 이후 더 잘 보인 캡틴락 캐릭터
경록절 2026을 이야기할 때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나온 한경록의 모습도 빼기 어렵습니다. 방송에서 보인 그는 막연히 떠올리는 ‘거친 록커’ 이미지와 조금 달랐습니다. 깔끔하고 규칙적인 생활, 사람을 챙기는 태도, 오래 음악을 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 방식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지점이 경록절과도 이어집니다. 그냥 무대 위에서 소리 지르는 축제가 아니라, 오래 버티는 사람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자리처럼 보이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음악 축제는 가끔 라인업만 화려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록절은 주최자의 캐릭터가 행사 전체의 톤을 잡습니다. “놀자”는 말 안에 책임감이 있고, “달리자”는 말 안에 계속 살아남자는 농담 같은 진심이 있습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도 있다
물론 모두에게 맞는 축제는 아닙니다. 록 공연 특유의 에너지, 스탠딩 공연의 밀도, 즉흥적인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조금 정신없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조용히 앉아서 완성도 높은 무대만 감상하고 싶은 분이라면 경록절의 왁자지껄함이 취향 밖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현장 분위기, 관객 반응, 뮤지션들 사이의 친밀한 호흡을 좋아한다면 꽤 강하게 꽂힙니다. 경록절은 ‘정교한 쇼’라기보다 ‘계속 이어져 온 관계가 무대 위에서 폭발하는 순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영상으로 보면 약간 어수선해 보여도, 그 어수선함 안에 이상한 생기가 있습니다. 이건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저는 그 투박함이 경록절의 맛이라고 봅니다.
경록절 2026이 남긴 장면
2026년 경록절은 크라잉넛 30주년 이후의 흐름과도 맞물려 더 의미 있게 보였습니다. ‘말 달리자’로 상징되는 에너지가 단순한 추억팔이에 머물지 않고, 후배 뮤지션과 관객에게 계속 넘어가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종서 같은 선배와 비비 같은 현재형 아티스트가 같은 이름 아래 놓였다는 것도 상징적이었고요.
저는 경록절을 볼 때마다 잘 만든 음악 예능의 장기 프로젝트를 보는 기분이 듭니다. 매년 게스트는 바뀌고, 무대는 달라지고, 그해의 분위기도 조금씩 다르지만, 중심에는 늘 “같이 놀아야 오래 간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2026년 판은 그 마음을 꽤 크게 터뜨린 회차였습니다. 완벽하게 세련된 축제라서 좋았다기보다, 오래된 사람들이 아직도 새롭게 만나는 방식이 살아 있어서 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