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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철 소리그림을 정주행하듯 따라가 봤더니, 노래보다 오래 남은 붓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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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철 소리그림을 정주행하듯 따라가 봤더니, 노래보다 오래 남은 붓질

김수철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제 머릿속에서는 먼저 ‘젊은 그대’의 에너지와 ‘나도야 간다’의 리듬이 튀어나옵니다. 그런데 ‘김수철 소리그림’이라는 제목을 보고는 조금 멈칫했어요. 노래도 하고, 영화음악도 하고, 국악과 록을 엮던 사람이 이제는 소리를 그림으로 풀어낸다니, 이건 거의 음악 예능의 스핀오프를 미술관에서 만나는 느낌이더라고요.

예술의전당 안내 기준으로 ‘김수철: 소리그림’은 2026년 2월 14일부터 3월 29일까지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제1, 2전시실에서 열린 전시였습니다. 성인 관람료 1만 원, 청소년 7천 원, 어린이와 경로 5천 원으로 안내됐고, 매주 월요일은 쉬는 일정이었죠. 이미 지난 전시라 실시간 예매 팁보다는, 이 전시가 왜 꽤 흥미로운 장면이었는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노래로 기억한 김수철, 그림으로 다시 보이는 순간

김수철은 대중에게 워낙 여러 얼굴로 남아 있습니다. 1970~80년대 록 그룹 ‘작은거인’과 솔로 가수 이미지도 있고, ‘고래사냥’, ‘서편제’, ‘태백산맥’ 같은 영화음악 작업도 있죠.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같은 굵직한 행사 음악까지 떠올리면, 사실 ‘음악으로 한국적인 에너지를 밀어붙인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그런데 ‘소리그림’은 그 이력을 단순히 전시장 홍보용으로 가져온 게 아니라, 김수철의 작업 방식 자체를 다른 화면으로 옮긴 쪽에 가깝습니다. 알려진 내용들을 보면 그는 그림을 꽤 오래, 30년 안팎으로 이어왔고, 이번 전시는 그중 소리를 시각화한 작품 100여 점을 골라 보여주는 자리였어요. 그러니까 갑자기 그림을 시작한 유명 가수의 이벤트가 아니라, 오래 쌓아둔 리듬을 한꺼번에 꺼내 보인 장면에 더 가깝습니다.

소리그림은 추상화인데, 이상하게 장면이 들린다

전시 제목의 재미는 ‘소리’와 ‘그림’이 서로 안 맞는 듯 맞는다는 데 있습니다. 소리는 귀로 지나가고, 그림은 눈앞에 남잖아요. 그런데 김수철의 작업은 그 사이를 일부러 비틀어요. 붓질의 속도, 반복되는 선, 푸른색의 겹, 검고 흰 물감의 충돌이 마치 장단처럼 보입니다. 드라마로 치면 대사가 적은 회차인데 배경음악과 표정만으로 감정이 꽉 차는 편에 가까워요.

작품군도 꽤 분명하게 갈립니다. 자연의 에너지를 푸른 획으로 쌓은 ‘소리푸른’, 일상과 내면의 감정을 담은 ‘수철소리’, 우주와 행성의 이미지를 끌어온 ‘소리탄생’, 고요와 침묵 쪽으로 들어가는 ‘소리너머 소리’가 주요 흐름으로 소개됐습니다. 이 네 갈래를 따라가면 전시가 그냥 추상화 모음으로 흩어지지 않고, 한 사람의 귀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보는 구성처럼 느껴집니다.

관전 포인트는 네 가지로 보면 편하다

  • 첫째, 붓질의 속도감. 김수철의 음악을 아는 사람이라면 선이 멈춰 있는 게 아니라 연주 중인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특히 반복되는 획에서는 국악 장단의 호흡을 떠올리게 됩니다.
  • 둘째, 색보다 리듬. 예쁜 색감을 감상하는 전시라고 기대하면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어요. 색 자체보다 같은 색이 어떻게 쌓이고 밀리고 번지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 셋째, 유명인의 취미 전시로 보면 손해. 이 전시는 ‘가수 김수철이 그림도 그렸대’에서 멈추면 맛이 덜합니다. 음악가가 평생 붙잡아온 소리의 감각이 회화로 넘어간 과정으로 봐야 더 재밌습니다.
  • 넷째, 우주와 내면이 같은 화면에 놓인다는 점. 일상의 감정, 전쟁과 기후 이상에 대한 감각, 행성의 상상까지 한 화면권 안으로 들어오다 보니 스케일이 갑자기 커집니다. 이 부분은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이 과감함이 꽤 김수철답다고 느꼈습니다.

호불호는 분명히 갈릴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친절한 전시를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조금 낯설 수 있습니다. 인물화처럼 ‘무엇을 그렸는지’ 바로 보이는 작품보다, 리듬과 감각을 먼저 받아야 하는 추상 회화가 중심이니까요. 설명을 읽어도 바로 착 붙기보다, 한 발 떨어져 있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들어오는 타입입니다.

반대로 음악을 들을 때 가사보다 편곡, 악기 질감, 드럼의 밀도 같은 걸 먼저 듣는 사람이라면 꽤 잘 맞을 가능성이 큽니다. 드라마로 치면 사건 전개만 좇는 작품보다 미장센, 사운드, 배우의 침묵을 보는 작품에 끌리는 분들요. 김수철 소리그림은 바로 그 감상법을 요구합니다. ‘무슨 뜻이지?’보다 ‘어떤 박자로 움직이지?’라고 보면 훨씬 부드럽게 들어옵니다.

내 취향에는 꽤 오래 남는 사이드 스토리였다

저는 이 전시가 김수철이라는 인물을 다시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대중음악, 영화음악, 국악 실험, 국제 행사 음악까지 해온 사람이 결국 같은 질문을 붙잡고 있었던 것 같거든요. 소리는 어디서 오고, 몸을 통과한 감각은 어떤 모양으로 남는가. 이 질문이 조금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전시의 방향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들리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오래 쌓아온 호흡을 캔버스에 밀어 넣는 쪽입니다.

김수철 소리그림은 누군가에게는 난해한 추상화 전시였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작은 거인’의 또 다른 무대였을 겁니다. 제 쪽은 후자에 더 가깝습니다. 노래 한 곡을 듣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몇십 년 동안 어떤 소리의 세계를 혼자 계속 넓혀왔는지 보는 기분이었어요. 화려한 히트곡보다 조용한 여운이 오래 가는 회차처럼, 이 전시는 김수철이라는 이름 뒤에 남아 있던 긴 잔향을 보여준 장면으로 기억될 만합니다.

김수철 소리그림을 정주행하듯 따라가 봤더니, 노래보다 오래 남은 붓질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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