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은우 비보에 동료들 침통, ‘하나뿐인 내편’ 다시 보니 더 먹먹했던 이유

얼마 전 ‘하나뿐인 내편’ 재방송을 틀어놓고 딴짓을 하다가, 왕이륙이 나오는 장면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밝고 능청스러운 캐릭터였는데, 故 정은우의 비보가 전해진 뒤 다시 보니 그 웃는 얼굴이 전혀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연예 매체 보도에 따르면 배우 정은우는 2026년 2월 11일 세상을 떠났고, 향년 40세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동료 배우들과 팬들이 남긴 추모 글이 이어지면서 연예계 분위기도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밝은 얼굴로 기억되는 배우라 더 먹먹했다
정은우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바로 얼굴이 떠오르는 분도 있고, ‘아, 그 배우!’ 하고 작품명을 듣고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는 2006년 KBS ‘반올림3’로 데뷔했고, 이후 ‘히트’, ‘추노’, ‘웃어라 동해야’, ‘태양의 신부’, ‘다섯 손가락’, ‘잘 키운 딸 하나’, ‘돌아온 황금복’ 같은 작품을 지나왔습니다. 특히 대중적으로는 2018년 KBS2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의 왕이륙 역이 선명합니다.
왕이륙은 극 안에서 아주 무거운 축을 담당하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기억에 남았습니다. 주말드라마 특유의 갈등이 몰아칠 때 숨 쉴 틈을 주는 캐릭터였거든요. 퓨전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집안의 분위기를 풀어주는 쪽에 가까운 인물이라 시청자 입장에서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역할은 쉬워 보여도 은근히 까다롭습니다. 너무 가볍게 가면 붕 뜨고, 너무 진지하게 가면 극의 리듬을 막아버리니까요.
동료들의 추모가 유난히 아프게 들린 이유
비보 이후 동료들이 남긴 글에는 공통된 온도가 있었습니다. 놀람, 미안함, 허망함. 낸시랭, 김윤서, 박슬기, 문희경 등 고인과 인연이 있던 동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를 전했습니다. 특히 현장에서 성실하게 대본을 붙들고 있었던 모습, 작은 이야기에 잘 웃어주던 모습, 다시 작품에서 만나고 싶었다는 말들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추모는 단순히 ‘좋은 배우였다’는 예의상 표현으로만 들리지 않았습니다. 함께 일한 사람이 기억하는 배우의 결은 꽤 구체적이거든요. 바쁜 촬영장 안에서 누구는 늘 예민하고, 누구는 조용히 자기 몫을 해내고, 누구는 주변 사람의 긴장을 풀어줍니다. 동료들이 떠올린 정은우는 후자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중이 아는 필모그래피 너머에 있던 사람의 시간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농구선수 출신에서 배우까지, 의외로 넓었던 궤적
정은우의 이력을 다시 보면 꽤 입체적입니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출신이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농구선수로 활약한 경력이 알려져 있습니다. 큰 키와 체격 때문에 모델 출신으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운동선수의 시간을 거쳐 연기로 들어온 케이스였습니다. 또 앙드레김 패션쇼 무대에 섰고, 2007년 앙드레김 베스트스타 어워드 신예스타상을 받은 이력도 있습니다.
이런 배경은 그의 화면 속 이미지와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정은우는 날카로운 악역보다 반듯하고 부드러운 인물, 혹은 말끔한 분위기의 캐릭터에서 강점이 있었습니다. ‘태양의 신부’처럼 주연급 서사를 맡은 작품도 있었고, ‘돌아온 황금복’에서는 능력 있는 인물의 단단한 이미지를 보여줬습니다. 대단히 요란한 스타성으로 밀어붙이는 배우라기보다는, 작품 안에서 자기 자리를 꾸준히 만들어온 배우에 가까웠습니다.
정주행 관점에서 다시 보이는 작품들
정주행 리뷰어 입장에서 고인의 작품을 다시 떠올리면,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건 역시 ‘하나뿐인 내편’입니다. 총 106부작으로 호흡이 긴 작품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기에는 체력이 좀 필요하지만, 당시 최고 시청률이 40%를 넘겼을 만큼 대중성이 강했습니다. 가족극의 감정선, 출생의 비밀, 용서와 화해 같은 익숙한 재료가 많지만, 캐릭터들이 워낙 선명해서 중간중간 몰입도가 좋습니다.
다만 호불호도 분명합니다. 갈등이 반복되는 구간에서는 답답하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고, 주말드라마 문법에 익숙하지 않으면 감정 과잉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왕이륙 같은 캐릭터는 그런 진한 양념 사이에서 살짝 숨을 틔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고인의 장면을 다시 보면, 극 전체의 무게를 조절하는 배우의 존재감이 새삼 보입니다.
- 입문작으로는 ‘하나뿐인 내편’이 가장 편합니다.
- 조금 더 진한 일일극 감성을 원하면 ‘돌아온 황금복’도 괜찮습니다.
- 초기 필모그래피가 궁금하다면 ‘반올림3’와 ‘히트’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 짧게 분위기만 보고 싶다면 주요 출연 장면 중심으로 보는 것도 부담이 덜합니다.
비보를 소비하는 방식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연예인의 갑작스러운 소식이 전해지면 대중의 관심은 빠르게 몰립니다. 마지막 SNS 게시물, 지인들의 댓글, 생전 메시지 같은 것들이 기사 제목으로 크게 걸리기도 합니다. 사실 궁금한 마음이 생기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저도 작품을 좋아했던 사람의 소식이면 더 찾아보게 됩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는 ‘알 권리’보다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이 먼저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인의 삶을 몇 줄의 자극적인 문장으로 납작하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배우 정은우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그의 마지막 순간을 추측하는 일이 아니라, 그가 화면 안에서 남긴 얼굴과 대사, 동료들이 기억한 다정한 태도를 천천히 떠올리는 쪽에 더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작품은 남고, 장면은 다시 재생됩니다. 그래서 지금 다시 보는 왕이륙의 웃음은 예전처럼 가볍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그 배우가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