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보테로 전시를 드라마 정주행하듯 보고 왔더니 남는 장면들

얼마 전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페르난도 보테로 전시 후기를 다시 꺼내보다가, 이 전시는 정말 드라마 한 시즌을 몰아본 느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 하나하나가 사건처럼 튀는 전시는 아닌데, 방을 넘길수록 작가의 말투가 점점 익숙해지는 쪽이랄까요. 예술의전당 안내 기준으로 전시는 2026년 4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제1·2·3전시실에서 진행됐고, 작품 수는 112점 규모였습니다. 숫자만 보면 꽤 큰 전시인데, 막상 들어가면 압도감보다 ‘어, 이 사람 계속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하고 있네?’ 하는 재미가 먼저 와요.
처음엔 귀엽고, 조금 지나면 이상하게 날카롭다
페르난도 보테로 하면 대부분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어요. 크고 둥글고 통통한 인물들. 솔직히 저도 처음엔 ‘아, 귀여운 그림 많겠네’ 정도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작품 앞에 서면 단순히 사람을 크게 그린 게 아니라는 게 금방 느껴져요. 얼굴 표정은 담담한데 몸의 부피가 말도 안 되게 커져 있고, 사물도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데 화면은 이상하게 차분합니다.
이 지점이 드라마로 치면 캐릭터 첫인상과 실제 서사가 달라지는 순간 같았어요. 초반엔 유쾌한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3화쯤 가면 이 사람이 꽤 많은 걸 보고 지나온 인물이라는 느낌이 드는 그런 전환요. 보테로의 인물들은 웃기려고 크게 그린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권위, 종교, 가족, 욕망, 폭력 같은 꽤 무거운 주제를 품고 있습니다.
전시 구성은 여섯 개 챕터처럼 흘러간다
이번 전시는 변주, 라틴 아메리카, 종교, 투우, 정물, 서커스라는 여섯 섹션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저는 이 구성이 꽤 좋았습니다. 작가 연대기를 딱딱하게 따라가는 방식보다, 보테로가 집요하게 붙잡았던 장면들을 테마별로 보여주니까 훨씬 덜 지루했거든요.
- 변주 섹션에서는 고전 명화를 보테로식으로 다시 읽는 재미가 큽니다.
- 라틴 아메리카 섹션은 색감과 인물의 분위기에서 지역성이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 종교 섹션은 경건함보다 인간적인 묵직함이 먼저 다가옵니다.
- 투우와 서커스는 화려하지만, 어딘가 쓸쓸한 뒷맛이 있습니다.
- 정물은 과일과 악기 같은 사물이 주인공인데도 인물화 못지않게 존재감이 큽니다.
특히 정물 쪽은 의외였어요. 사과, 배, 기타 같은 소재가 이렇게 묵직할 일인가 싶을 정도로 화면을 꽉 채웁니다. 드라마에서 조연인 줄 알았던 캐릭터가 갑자기 자기 에피소드 하나를 통째로 가져가는 느낌이랄까요.
호불호는 분명히 갈릴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모든 사람이 이 전시를 끝까지 신나게 볼 타입은 아니에요. 보테로의 조형 언어는 워낙 강해서 몇 개 방을 지나면 ‘또 둥근 인물인가?’ 싶은 순간이 올 수 있습니다. 미니멀하거나 차가운 추상 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화면이 다소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근데 저는 그 반복이 오히려 관전 포인트라고 봤어요. 예능으로 치면 고정 멤버의 말버릇이 처음엔 뻔해 보여도, 회차가 쌓이면 그 안에서 미묘한 차이를 찾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같은 둥근 형태라도 어떤 작품은 풍요롭게 보이고, 어떤 작품은 답답하게 보이고, 또 어떤 작품은 권력을 풍자하는 듯한 불편함을 줘요. 겉모습은 비슷한데 감정의 온도는 계속 달라집니다.
가볍게 봐도 되고, 오래 씹어도 되는 전시
보테로는 1932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태어나 2023년에 세상을 떠난 작가입니다. 회화, 드로잉, 조각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양감 있는 양식을 만들었고, 그 스타일은 흔히 보테리즘이라고 불려요. 이름을 몰라도 그림을 보면 ‘아, 이 작가!’ 하고 알아볼 수 있다는 건 사실 엄청난 힘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좋았던 건 대중적인 접근성과 미술사적인 층위가 같이 있었다는 점이에요. 아이와 함께 온 관객은 형태의 재미를 먼저 볼 수 있고,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벨라스케스 같은 고전 회화의 변주나 라틴아메리카적 시선을 더 오래 붙잡을 수 있습니다. 저는 중간중간 작품 앞에서 오래 멈추기보다, 한 바퀴 돈 뒤 다시 마음에 걸렸던 그림으로 돌아가는 방식이 잘 맞았어요.
제 취향에는 투우보다 정물이 오래 남았다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투우나 서커스 섹션이 제일 강하게 남을 줄 알았어요. 소재 자체가 드라마틱하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상하게 정물 쪽이 더 자주 떠오릅니다. 커다란 과일, 부풀어 오른 악기, 묵직하게 놓인 사물들. 움직임이 거의 없는데도 화면 안에 리듬이 있었어요.
보테로 전시는 ‘예쁘다’와 ‘웃기다’에서 멈추면 조금 아쉽습니다. 물론 첫인상은 충분히 귀엽고 친근해요. 하지만 그 둥근 표면 아래에 풍자, 애도, 생활감, 권위에 대한 농담이 겹겹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전시를 미술 입문자에게도 꽤 추천하고 싶어요. 어렵게 겁주지 않으면서도, 보고 난 뒤에 자꾸 장면을 되감게 만드는 힘이 있거든요. 잘 만든 드라마가 마지막 회를 다 보고도 특정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하듯, 보테로의 그림도 꽤 오래 눈 안쪽에 남는 편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