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재즈페스티벌 2026 라인업을 정주행해봤더니, 취향표가 꽤 선명해졌다

얼마 전 친구랑 2026년 페스티벌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서울재즈페스티벌 2026 라인업까지 쭉 넘겨보게 됐다. 드라마도 그렇지만 페스티벌도 캐스팅이 절반이다. 누가 첫 장면을 열고, 누가 중반의 온도를 바꾸고, 누가 마지막에 여운을 남기느냐에 따라 전체 감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서울재즈페스티벌 공식 공지 기준으로 제18회 서울재즈페스티벌 2026은 2026년 5월 22일 금요일부터 5월 24일 일요일까지 3일 동안 올림픽공원에서 열렸다. 멜론티켓 안내 기준으로 3일권과 토요일·일요일 1일권은 매진 공지가 올라왔을 만큼 초반 반응도 꽤 뜨거웠다. 사실 이 정도면 단순한 재즈 축제라기보다, 재즈를 중심에 두고 팝·소울·록·인디·K팝 감각까지 한 자리에서 만나는 시즌제 음악 예능에 가깝다.
라인업 첫인상은 ‘재즈만 듣는 사람’보다 넓었다
서울재즈페스티벌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정통 재즈 팬을 위한 조용하고 진지한 무대를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2026 라인업을 보면 분위기가 훨씬 넓다. 자넬 모네, 존 바티스트, 허비 행콕처럼 이름만으로도 무게감이 생기는 아티스트가 있고, FKJ, 프렙, 웨이브투어스, 실리카겔, 백예린, 장범준, 에픽하이처럼 국내 관객에게 익숙한 결의 이름도 함께 들어왔다.
이 조합이 흥미로운 건 취향의 문턱을 낮춘다는 점이다. 재즈를 깊게 파는 사람은 허비 행콕이나 아투로 산도발, 메데스키 마틴 앤 우드 쪽에서 반응할 테고, 평소 플레이리스트 중심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은 FKJ나 프렙, 웨이브투어스, 백예린 쪽으로 들어오기 쉽다. 그러다 현장에서 다른 무대까지 흘러가면, 예상 밖의 취향을 하나쯤 주워오게 되는 구조다.
요일별 캐릭터가 꽤 다르게 잡혔다
금요일인 5월 22일은 시작부터 색이 진했다. 자넬 모네, 아투로 산도발, 트롬본 쇼티 앤 올리언스 애비뉴가 전면에 있고, 레저, 씨엔블루, 장범준, 에밀리 킹, 마마스 건, 조 아몬-존스까지 이어졌다. 여기에 도겸과 승관의 조합, 태버, 지바노프 같은 이름까지 있어 첫날부터 장르의 폭이 넓었다. 드라마로 치면 1회부터 세계관을 크게 펼쳐놓는 타입이다.
토요일 5월 23일은 대중성과 그루브가 강했다. 존 바티스트, FKJ, 코리 헨리 앤 더 펑크 어파슬스, 알파 미스트가 중심을 잡고, 에픽하이, 백예린, 프렙, 태용, 해찬, 최유리, 스텔라장까지 붙었다. 솔직히 토요일이 매진된 건 꽤 납득된다. 재즈 팬, 팝 팬, K팝 팬, 인디 팬이 각자 핑계를 만들기 좋은 날이었다.
일요일 5월 24일은 여운 담당에 가깝다. 허비 행콕이라는 이름이 주는 상징성이 워낙 크고, 오브 몬스터즈 앤 맨, 엘라 마이, 혁오, 실리카겔, 웨이브투어스, 프리 내셔널스, 적재, 고상지, 윤석철 Artifaction 등이 붙으면서 마지막 날 특유의 감정선이 생겼다. 셋째 날은 낮부터 천천히 들어가서 밤에 크게 젖어드는 그림이 잘 어울린다.
좋았던 지점과 호불호 갈릴 만한 지점
좋았던 건 라인업의 층위다. 이름값 있는 해외 아티스트만 세워놓고 끝나는 방식이 아니라, 국내 관객이 실제로 반응할 만한 이름들이 중간중간 촘촘히 놓여 있다. 그래서 “이 사람 보러 갔다가 저 사람에게 치였다”는 식의 우연이 생기기 좋다. 페스티벌에서 이런 우연은 꽤 중요하다.
다만 호불호도 분명 있다. 서울재즈페스티벌을 ‘재즈 페스티벌’이라는 말 그대로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팝·록·K팝 비중이 크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재즈 입문자에게는 이 넓은 구성이 장점이다. 무대 간 이동, 체력 배분, 시간표 충돌까지 생각하면 모든 무대를 욕심내기보다 자기 취향의 중심축을 하나 정해두는 편이 훨씬 편하다.
- 정통 재즈 쪽을 원하면 허비 행콕, 아투로 산도발, 알파 미스트, 조 아몬-존스 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 편하게 몸을 흔드는 무드를 원하면 FKJ, 프렙, 레저, 프리 내셔널스 쪽이 잘 맞는다.
- 국내 아티스트 중심으로 즐기고 싶다면 백예린, 에픽하이, 혁오, 실리카겔, 웨이브투어스, 장범준 조합이 강하다.
예능처럼 보면 더 재미있는 페스티벌
나는 이런 라인업을 볼 때 자꾸 예능 편성표처럼 보게 된다. 헤드라이너는 메인 MC 같고, 낮 시간대 무대는 의외의 입덕 포인트를 만드는 게스트 같다. 서울재즈페스티벌 2026은 특히 그 조합이 선명했다. 유명한 사람만 쭉 세운 느낌보다, 각 요일마다 다른 리듬으로 관객을 데려가려는 편성 의도가 보였다.
공식 공지에서는 S.A.R. 불참과 스텔라따뚜이 합류 같은 라인업 변경 안내도 있었다. 이런 부분은 페스티벌에서 늘 생길 수 있는 변수다. 그래서 티켓을 잡을 때는 특정 한 팀만 보고 모든 기대를 걸기보다, 그날 전체 분위기가 내 취향과 맞는지를 보는 게 덜 아쉽다. 특히 야외 페스티벌은 날씨, 동선, 음식 대기, 화장실 줄까지 감상의 일부가 되니까 말이다.
내 취향으로 고른다면 이 날
개인적으로 하루만 고르라면 토요일이 가장 안정적이다. 존 바티스트와 FKJ가 주는 에너지, 백예린과 프렙의 말랑한 감성, 에픽하이의 라이브 친화적인 무드가 한데 묶여 있어서 실패 확률이 낮아 보인다. 다만 음악사적인 무게와 마지막 날의 낭만을 생각하면 일요일도 쉽게 버리기 어렵다. 허비 행콕이 있는 날은 그냥 이름 하나로 공기가 달라진다.
서울재즈페스티벌 2026은 ‘재즈를 아는 사람만 즐기는 축제’라기보다, 음악 취향을 넓히고 싶은 사람이 들어가기 좋은 넓은 문 같았다. 드라마를 정주행하다 보면 처음엔 주연 때문에 시작했다가 조연에게 마음이 가는 순간이 있는데, 이 페스티벌도 딱 그런 재미가 있다. 보고 싶은 이름 하나로 들어가서, 예상하지 못한 무대 하나를 오래 기억하게 되는 쪽. 나는 그런 페스티벌이 결국 제일 오래 남는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