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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 전시를 들여다보다 마음에 남은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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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 전시를 들여다보다 마음에 남은 장면

얼마 전 베르디 전시 소식을 읽다가 포스터 속 캐릭터 앞에서 한참 멈췄다. 처음엔 귀여운 그림이 눈에 들어왔는데, 전시 제목인 ‘I Believe in Me’를 다시 보니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좋아하는 드라마도 제목의 뜻을 알고 나면 첫 장면이 달라 보이지 않나. 이 전시 역시 캐릭터를 만든 사람의 시간을 알고 보면 이미지가 한 겹 더 깊어진다.

베르디는 일본 오사카 출신의 그래픽 아티스트다. 롯데뮤지엄에서 열린 ‘I Believe in Me’는 그의 첫 미술관 개인전으로, 2026년 4월 24일부터 7월 19일까지 진행됐다. 이미 막을 내린 전시라 관람을 권하는 글은 아니다. 어떤 장면이 눈길을 끌었고, 어디서 취향이 갈릴 만한지 전시 내용을 따라가며 이야기해보고 싶다.

귀여운 빅을 보고 들어가면 다른 표정이 보인다

베르디를 잘 몰라도 빅이라는 캐릭터의 얼굴은 낯설지 않을 수 있다. 판다와 토끼를 섞은 듯한 모습이다. 둥글고 친근해서 처음에는 캐릭터 상품의 주인공처럼 보이는데, 베르디의 작업을 따라가면 그 얼굴이 감정을 담는 그릇처럼 느껴진다. 말로 길게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을 표정과 색, 짧은 문장으로 옮기는 방식이 흥미롭다.

전시는 빅을 중심으로 한 드로잉에서 출발해 캐릭터가 조각과 설치로 커지는 흐름을 보여준다. 롯데뮤지엄 소개에 따르면 크레용 드로잉 100점 이상과 대형 조각 22점이 출품됐다. 작은 화면에서 보던 이미지가 몸집을 얻는 셈이다. 드라마로 치면 조연인 줄 알았던 인물이 한 회를 통째로 이끄는 순간 같다. 익숙한 얼굴인데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이 달라지니 존재감도 달라진다.

다만 캐릭터의 귀여움만 기대했다면 전시의 메시지가 다소 진지하게 다가왔을 수도 있겠다. ‘나를 믿는다’는 말은 듣기 좋지만 흔한 문장으로 소비되기 쉽다. 이 전시에서는 그 말이 작품의 모양과 크기로 얼마나 설득력을 얻는지가 관전 포인트였을 것 같다. 사진 한 장으로는 조각 앞에 섰을 때의 크기나 거리감까지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도 아쉽다.

짧은 문장이 장면을 오래 붙잡는다

베르디의 작업에는 ‘Girls Don’t Cry’와 ‘Wasted Youth’처럼 짧고 강한 문구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옷이나 포스터에서 먼저 봤다면 멋진 로고로 기억할 법하다. 그런데 문장만 따로 곱씹으면 분위기가 살짝 바뀐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지나온 시간을 헛된 것으로만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읽힌다.

나는 이런 지점이 드라마 대사와 닮았다고 느낀다. 아무 맥락 없이 들으면 평범한 말인데, 인물이 그 말을 꺼내기까지의 시간을 알면 오래 남는다. 베르디의 문구도 글자 모양이 주는 힘이 먼저 오고, 그다음에 왜 이런 말을 붙잡았는지 궁금해진다. 전시에서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별도의 흐름으로 보여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물론 영어 문구와 스트리트 패션 문화에 관심이 없다면 처음부터 깊이 몰입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작품이 던지는 감정에 반응하기 전에 브랜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수도 있고. 그건 충분히 이해되는 호불호다. 반대로 평소 좋아하던 로고를 ‘누가,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나’까지 따라가고 싶었던 사람에게는 꽤 반가운 전시였겠다.

작업실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이 좋다

전시의 마지막 흐름에는 베르디의 도쿄 스튜디오를 재현한 공간이 있었다. 완성된 캐릭터와 문구를 본 뒤 작업 환경으로 들어가는 구성이다. 결과물을 먼저 보여주고 창작자의 책상으로 카메라를 돌리는 다큐멘터리 같아서 마음이 간다. 멋지게 완성된 이미지에도 반복해서 그리고 고친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롯데뮤지엄은 이번 전시를 베르디가 쌓아온 시각 언어를 미술관 안에서 만나는 자리로 소개했다. 그 설명을 읽으며 가장 궁금했던 것도 작업의 이동이었다. 티셔츠에서 보던 그림이 전시장 벽과 조각으로 옮겨질 때 같은 이미지로 남을까, 아니면 전혀 다른 인상을 줄까. 전시의 규모보다 이 질문이 더 오래 머물렀다.

좋아할 사람과 망설일 사람이 꽤 선명하다

캐릭터 디자인, 패션, 음악 주변의 시각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베르디의 세계를 따라가는 재미가 클 것 같다. 드로잉과 조각, 글자가 같은 감정을 어떻게 다르게 전하는지 비교해볼 수도 있다. 특히 빅의 얼굴만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문구와 작업실까지 이어지는 구성이 캐릭터의 바깥을 보여줬을 듯하다.

반면 회화 작품을 오래 바라보며 조용히 감상하는 전시를 선호한다면 취향이 갈렸을 것이다. 밝은 캐릭터와 선명한 문장이 주는 즉각적인 매력이 큰 만큼, 그 표현이 너무 직접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나는 그 직접성이 베르디의 장점이라고 본다. 복잡한 마음을 어려운 말 뒤에 숨기지 않고, 누구나 알아볼 만한 얼굴과 짧은 문장에 실어 보내는 방식이다.

전시가 끝난 뒤에도 ‘I Believe in Me’라는 제목이 남는다. 자신을 믿는 일이 늘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가능한 건 아니다. 불안했던 시간에 그린 그림을 계속 이어가는 쪽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베르디의 캐릭터가 유독 오래 눈에 밟히는 건, 귀여운 얼굴 뒤에 그런 시간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베르디 전시를 들여다보다 마음에 남은 장면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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