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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펀맨을 정주행했더니 조연들이 더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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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펀맨을 정주행했더니 조연들이 더 오래 남았다

얼마 전 원펀맨을 다시 틀었다가 첫 화에서 멈추지 못했다. 처음 볼 때는 사이타마가 얼마나 시원하게 적을 쓰러뜨리는지만 기다렸는데, 다시 보니 그 옆에서 진지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이 너무 강해서 싸움의 결과가 뻔할 것 같은 작품인데도 계속 다음 화를 누르게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이길 게 뻔한데도 전투가 재미있는 이유

원펀맨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취미로 히어로를 하는 사이타마는 상대가 누구든 주먹 한 방에 끝내버릴 만큼 강하다. 보통 배틀물이라면 주인공이 어떻게 이길지가 가장 큰 궁금증인데, 여기서는 그 질문이 일찌감치 사라진다. 대신 작품은 다른 데서 재미를 찾는다. 적이 잔뜩 힘을 주며 등장할수록 사이타마의 무심한 반응이 웃기고, 순식간에 끝나는 승부 뒤에는 묘하게 허탈한 기분이 남는다.

그렇다고 매번 같은 농담만 반복하지는 않는다. 사이타마가 화면에 나오기 전까지 다른 히어로들은 진짜로 고전한다. 그들에게는 한 번의 공격을 버티는 일도 절박하다. 시청자는 사이타마가 나타나면 해결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 전까지 버티는 사람들을 응원하게 된다. 승패보다 누가 어떤 마음으로 싸우는지가 궁금해지는 식이다. 이 구조를 알고 다시 봐도 긴장감이 살아 있는 장면이 꽤 많았다.

사이타마 옆에 서면 인물이 선명해진다

제노스는 사이타마와 붙여 놓았을 때 특히 재미있다. 스승의 말과 행동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제노스의 진지함과, 별생각 없이 일상을 보내는 사이타마의 태도가 계속 어긋난다. 둘의 대화는 별것 아닌 장면에서도 웃음을 만든다. 그런데 제노스 혼자 싸우는 모습을 보면 그 진지함이 농담으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실력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분명해서 응원하게 된다.

무면허 라이더도 기억에 남는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사이타마와 나란히 놓으면 능력 차이가 너무 크다.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러 나서는 인물이다. 원펀맨이 히어로 이야기를 가볍게 비틀면서도 히어로 자체를 우습게 만들지 않는다고 느낀 순간이 바로 이런 장면들이었다. 멋진 필살기보다 누군가를 지키겠다고 자리를 지키는 태도가 오래 남는다.

히어로 협회의 등급과 평판도 관전 포인트다. 사람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전부 보지 못하고, 히어로 역시 실력만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그래서 사이타마의 무심함이 웃기다가도 가끔은 답답하다. 주변 인물의 반응까지 챙겨 보면 단순한 강자 판타지보다 훨씬 풍성하게 읽힌다.

액션은 화려한데 웃음의 타이밍은 건조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강한 적이 등장할 때마다 화면의 분위기가 확 바뀌는 점이 재미있을 거다. 위협적인 표정, 거창한 기술, 숨 가쁜 공격이 이어지다가 사이타마가 끼어들면 공기가 툭 끊긴다. 심각한 장면을 오래 쌓아 놓고 허무하게 터뜨리는 방식이라, 액션을 보다가 웃고 웃다가 다시 액션에 집중하게 된다. 나는 이 박자가 원펀맨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본다.

다만 취향은 갈릴 수 있다. 주인공이 수련하고 패배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이야기를 기대하면 사이타마의 전투는 싱겁게 느껴질 수 있다. 그의 속마음도 큰 감정 표현보다 심드렁한 말투로 드러나는 편이다. 반대로 강한 주인공 때문에 주변 인물의 선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는 걸 좋아한다면 잘 맞는다. 화려한 전투만 기다리기보다 전투 전후의 짧은 대화까지 보는 쪽이 재미있었다.

다시 볼 때는 승부보다 반응을 보게 된다

첫 정주행에서는 괴인이 얼마나 세게 등장하고 얼마나 빨리 쓰러지는지가 눈에 띄었다. 다시 보니 누가 사이타마를 알아보고, 누가 오해하고, 누가 자기 방식대로 끝까지 버티는지가 더 흥미로웠다. 등장인물이 많아도 각자 히어로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서 장면이 쉽게 섞이지 않는다. 개그가 취향에 맞는다면 그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도 점점 커진다.

스포일러 없이 권하자면 초반 몇 화는 사이타마의 일상과 주변 인물의 반응을 함께 보는 게 좋다. 한 방으로 끝나는 장면만 모아 보면 이 작품이 왜 웃기면서도 가끔 뭉클한지 놓치기 쉽다. 내게 원펀맨은 가장 강한 사람이 주인공인 이야기이면서, 그 곁에서 저마다 애쓰는 사람들을 계속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원펀맨을 정주행했더니 조연들이 더 오래 남았다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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