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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부자 캐릭터에 꽂혀서 드라마·예능을 다시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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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부자 캐릭터에 꽂혀서 드라마·예능을 다시 봤더니

얼마 전 예능을 몰아서 보다가 이상하게 눈에 밟히는 인물이 있었다. 돈은 많고 집도 넓고 주변 사람도 많은데, 정작 감정은 중학생 때 멈춘 것 같은 사람. 저는 이런 캐릭터를 혼자 ‘피터팬부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한 번 이름을 붙이고 나니까 드라마와 예능에서 꽤 자주 보이더라.

피터팬부자는 단순히 철없는 부자가 아니다. 카드값 걱정은 없지만 감정 노동은 피하고, 선택지는 많은데 책임지는 장면에서는 묘하게 뒤로 빠진다. 그래서 보는 맛이 있다. 웃기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가끔은 짠하다.

돈 많은 어른아이, 왜 이렇게 자주 보일까

드라마에서 재벌 2세나 금수저 캐릭터가 등장하면 보통 두 갈래로 간다. 차갑고 유능한 인물, 아니면 해맑게 사고 치는 인물. 피터팬부자는 후자에 가깝지만, 그냥 코믹 담당으로만 쓰이면 재미가 금방 식는다. 진짜 흥미로운 건 그 사람이 왜 자라지 못했는지 조금씩 드러날 때다.

예를 들면 가족 회사 안에서 늘 보호받으며 살았거나, 집안의 기대를 피하려고 일부러 가벼운 척하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는 “내 인생 내가 즐기겠다”는 태도인데, 사실은 실패할 기회조차 제대로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인 셈이다. 이 지점이 나오면 캐릭터가 갑자기 납작하지 않아진다.

예능에서는 더 노골적이다. 고급 취미, 넓은 집, 비싼 장비가 화면에 먼저 잡히는데, 막상 생활 습관은 허술한 경우가 많다. 냉장고는 꽉 차 있는데 직접 챙겨 먹는 건 서툴고, 사람을 좋아한다면서 상대 기분을 읽는 데에는 느리다. 이런 대비가 웃음 포인트가 된다.

호감과 비호감이 갈리는 지점

솔직히 피터팬부자는 잘 만들면 귀엽고, 못 만들면 굉장히 피곤하다. 특히 돈으로 민폐를 덮는 장면이 반복되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금방 식는다. “저건 성장 서사가 아니라 특권 세탁 아닌가?” 싶은 순간이 생긴다.

제가 볼 때 호감으로 남는 기준은 꽤 분명하다. 캐릭터가 자기 행동의 결과를 실제로 겪느냐, 주변 인물이 감정 쓰레기통으로만 소비되지 않느냐, 그리고 변화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느냐. 이 세 가지가 있으면 철없음도 서사로 받아들여진다.

  • 호감 포인트: 자기 잘못을 늦게라도 인정하는 장면
  • 답답한 포인트: 사과보다 선물로 상황을 넘기는 장면
  • 재밌는 포인트: 돈은 많은데 생활 능력은 이상하게 허술한 대비
  • 몰입 포인트: 주변 사람이 무조건 받아주지 않을 때

근데 또 너무 빨리 착해져도 재미가 없다. 피터팬부자의 매력은 성장 속도가 살짝 느린 데서 나온다. 한 회 만에 철드는 캐릭터보다, 세 번쯤 삐끗하고 네 번째에 겨우 다른 선택을 하는 쪽이 더 그럴듯하다.

드라마에서는 로맨스보다 관계 변화가 더 맛있다

피터팬부자가 로맨스에 들어가면 초반에는 꽤 강하다. 직진도 잘하고, 이벤트도 화려하고, 자기 감정 표현에 망설임이 없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로맨스보다 관계의 균형이 중요해진다. 상대가 계속 돌봐주는 역할로만 남으면 이야기가 금방 불편해진다.

그래서 저는 이런 캐릭터가 연애보다 친구, 가족, 동료 관계에서 깨지는 장면을 더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차이는 것보다, 늘 웃어주던 친구가 처음으로 선을 긋는 장면이 더 세다. 그때야말로 이 인물이 자기 세계 밖에 다른 사람의 사정이 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스포일러를 피해서 말하면, 좋은 작품들은 대개 피터팬부자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지 않는다. 대신 아주 작은 생활 습관을 바꾼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는다든가, 남의 말을 끊지 않는다든가, 돈으로 해결하기 전에 먼저 묻는다든가. 이런 변화가 더 현실적이다.

예능에서 볼 때는 웃음 뒤의 민낯을 보게 된다

예능 속 피터팬부자는 드라마보다 훨씬 직접적이다. 제작진이 자막으로 장난을 치고, 패널들이 놀리면 시청자는 편하게 웃는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면 그 웃음 안에 묘한 외로움이 섞여 있을 때가 있다. 돈이 많아서 뭐든 혼자 할 수 있는데, 정작 같이 오래 버티는 관계는 적은 사람처럼 보일 때 말이다.

물론 예능은 편집의 힘이 크다. 실제 사람을 캐릭터처럼 단정하는 건 조심해야 한다. 다만 방송이 보여주는 이미지 안에서만 보면, 피터팬부자형 출연자는 관찰 예능과 궁합이 좋다. 집, 소비, 취미, 인간관계가 한 화면에 들어오면서 캐릭터가 빠르게 잡힌다.

다만 반복되면 피로감도 온다. 매번 비싼 물건 사고, 주변 사람이 수습하고, 본인은 해맑게 웃는 구조가 이어지면 웃음보다 거리감이 커진다. 그래서 제작진이 생활의 빈틈만 보여주지 말고, 그 사람이 누군가를 배려하는 작은 순간도 같이 담아야 오래 간다.

피터팬부자를 계속 보게 되는 이유

제가 이 키워드에 끌리는 이유는 결국 모순 때문이다. 남들은 부러워할 조건을 가졌는데, 정작 마음의 근육은 약한 사람.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어른이 되는 법은 아직 배우는 중인 사람. 이런 캐릭터는 현실감이 없을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현실적이다.

그리고 시청자로서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저 사람이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을까. 이번에는 돈 말고 마음을 쓸까. 이번에는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들을까. 이런 작은 기대가 쌓이면, 화려한 설정보다 오래 남는다.

피터팬부자는 취향을 많이 탄다. 저는 민폐를 미화하지 않고, 주변 인물에게도 충분한 감정선이 주어질 때 꽤 좋아하는 편이다. 철없음이 웃음으로만 소비되지 않고, 자기 삶을 조금씩 감당하는 쪽으로 움직이면 그때부터는 꽤 볼만해진다. 그래서 다음에 비슷한 캐릭터가 나오면 또 투덜거리면서도 끝까지 보게 될 것 같다.

피터팬부자 캐릭터에 꽂혀서 드라마·예능을 다시 봤더니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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