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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스미스 전시를 드라마 보듯 따라가봤더니 색감이 먼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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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스미스 전시를 드라마 보듯 따라가봤더니 색감이 먼저 말을 걸었다

얼마 전 전시장 사진을 몇 장 넘겨보다가 와일드스미스 전시 이미지에서 손이 멈췄다. 아이들 그림책 작가라고만 생각하면 조금 가볍게 보일 수도 있는데, 막상 들여다보면 이건 거의 색으로 만든 드라마에 가깝다. 장면마다 감정선이 있고, 동물 하나가 화면에 등장하는 방식도 꽤 극적이다. 정주행 리뷰어 눈으로 보자면 회차가 짧은데 밀도가 높은 작품을 보는 느낌이었다.

색감이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전시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는 영국의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1962년 그림책 ABC로 케이트 그리너웨이 메달을 받은 인물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가장 먼저 색이 튄다. 빨강, 노랑, 초록이 단순히 예쁘게 놓인 게 아니라 서로 부딪히고 번지면서 장면의 분위기를 만든다. 드라마로 치면 대사보다 미장센이 먼저 감정을 전달하는 타입이다.

특히 동물 그림에서는 선보다 색의 리듬이 강하다. 새의 깃털, 사자의 갈기, 물고기의 비늘 같은 요소가 사실적으로만 그려진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이 잠깐 멈춰서 색의 움직임을 따라가게 만든다. 그래서 와일드스미스 전시는 빠르게 훑으면 아깝다. 작품 앞에서 10초만 더 있어도 처음엔 안 보이던 색 조합이 뒤늦게 들어온다.

그림책 전시인데 은근히 어른 취향이다

사실 그림책 전시라고 하면 가족 관람, 어린이 체험, 포토존을 먼저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와일드스미스 전시는 어른 관람객에게도 꽤 잘 맞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림이 귀엽기만 한 쪽으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색은 화려한데 화면은 묘하게 차분하고, 동물들은 사랑스럽지만 마냥 둥글둥글하지 않다.

이 지점이 호불호를 만들 수도 있다. 깔끔한 캐릭터형 일러스트를 기대하면 선이 거칠고 색이 과하다고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손맛이 남아 있는 그림, 종이 위의 물감 질감, 예측하기 어려운 색 배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꽤 오래 붙잡히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가까웠다. 요즘 콘텐츠가 너무 반듯하게 다듬어진 느낌이라 그런지, 와일드스미스의 화면은 조금 야생적인 숨이 있어서 좋았다.

관람할 때 눈여겨볼 포인트

  • 동물의 표정보다 주변 색이 감정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기
  • 같은 노랑이나 초록도 장면마다 온도가 다르게 느껴지는지 비교하기
  • 그림책 원화 특유의 여백과 인쇄 이미지의 차이를 느껴보기
  • 아이 관람객과 어른 관람객이 서로 다른 장면에서 멈추는 지점 보기

드라마식으로 보면 회차 구성도 꽤 선명하다

와일드스미스 전시를 드라마처럼 따라가면 초반부는 작가의 세계관 소개다. 강렬한 색, 동물, 자연, 아이의 시선이 차례로 등장한다. 중반부로 갈수록 그림책이라는 매체가 왜 단순한 삽화가 아니라 하나의 서사인지 느껴진다. 글이 많지 않아도 이미지는 충분히 이야기를 끌고 간다.

예능으로 비유하면 편집점이 빠른 프로그램은 아니다. 대신 한 장면을 오래 잡아두고 시청자가 알아서 감정을 따라오게 하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조용한 관람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맞는다. 전시장 안에서 작품 설명을 전부 읽는 것도 좋지만, 설명보다 먼저 그림을 보고 나중에 정보를 확인하는 순서가 더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누구에게 잘 맞고, 누구에겐 애매할까

와일드스미스 전시는 색채감이 강한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 그림책을 어른의 시선으로 다시 보고 싶은 사람, 아이와 같이 가도 본인 관람 시간을 챙기고 싶은 사람에게 잘 맞는다. 사진으로만 보면 귀여운 전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 감상 포인트는 꽤 회화적이다.

반대로 화려한 설치물이나 큰 체험존을 기대한다면 다소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작품 자체를 바라보는 시간이 중심인 전시라서, 빠른 자극이나 인증샷 위주의 동선을 원하면 만족도가 갈릴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전시는 ‘얼마나 볼 게 많냐’보다 ‘한 장을 얼마나 오래 볼 수 있냐’에 더 가까운 타입이다.

내 취향 기준 추천도

  • 색감 강한 원화 전시를 좋아한다면: 높음
  • 그림책을 추억 콘텐츠로만 생각했다면: 의외성 있음
  • 조용히 걷는 전시를 선호한다면: 잘 맞음
  • 대형 미디어아트식 몰입감을 원한다면: 취향 차이 큼

보고 나면 가장 오래 남는 건 특정 작품 제목보다 색의 잔상이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어떤 대사보다 한 장면의 조명이나 배우의 표정이 먼저 떠오를 때가 있는데, 와일드스미스 전시가 딱 그런 쪽이었다. 아이의 눈으로 시작해서 어른의 감각으로 다시 보게 되는 전시라, 그림책을 가볍게만 봐왔던 사람일수록 의외로 천천히 걸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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