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작품을 다시 몰아봤더니, 로맨스보다 먼저 보인 진짜 매력

얼마 전 주말에 이종석 출연작을 몇 편 이어서 다시 봤는데, 예전엔 그냥 ‘키 크고 설레는 남주’로만 기억했던 장면들이 생각보다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특히 드라마를 오래 보다 보면 배우마다 반복해서 잘하는 감정의 결이 있는데, 이종석은 의외로 로맨스보다 ‘상처를 숨기는 얼굴’ 쪽에서 힘이 꽤 센 배우였습니다.
물론 작품마다 호불호는 확실히 갈립니다. 어떤 작품은 설정이 강해서 몰입이 빠르고, 어떤 작품은 중반 이후 전개가 취향을 탑니다. 그래도 이종석 필모를 따라가다 보면 왜 꾸준히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지 감이 옵니다. 얼굴로만 밀어붙이는 타입이 아니라, 캐릭터가 가진 불안과 허세, 다정함을 섞어서 보여주는 쪽에 강하거든요.
이종석의 시작점, 청춘 캐릭터가 잘 맞았던 이유
이종석을 본격적으로 각인시킨 작품을 떠올리면 많은 분들이 학교 2013을 이야기할 것 같아요.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교복이 잘 어울렸다는 점이 아닙니다. 당시 고남순 캐릭터는 말수가 많지 않고, 과거의 감정이 몸에 남아 있는 인물이었죠. 크게 울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표정이 먼저 말하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이후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박수하라는 캐릭터로 확 치고 올라왔습니다. 연상녀 로맨스라는 장르적 재미도 컸지만, 사실 이 작품의 매력은 초능력 설정보다 박수하가 가진 순정과 위험함의 균형에 있었어요. 너무 착하기만 하면 밋밋하고, 너무 집착처럼 보이면 부담스러운데, 그 사이를 꽤 영리하게 잡았습니다.
- 학교 2013: 청춘의 상처와 우정이 중심이라 감정선이 묵직함
- 너의 목소리가 들려: 로맨스, 법정극, 판타지 설정이 빠르게 섞임
- 피노키오: 기자물의 사회적 메시지와 가족 서사가 강함
로맨스 장인이라고만 부르기엔 아까운 지점
솔직히 이종석 하면 로맨스 장면을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죠. 피노키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 로맨스는 별책부록까지 이어서 보면 그 이유가 있습니다. 대사를 세게 치기보다 상대 배우의 리듬을 받아주는 편이라, 멜로 장면에서 과한 느낌이 덜합니다.
근데 재미있는 건, 이종석의 로맨스가 늘 달달하기만 하진 않다는 점이에요. W에서는 웹툰 세계라는 설정 때문에 캐릭터 자체가 현실감과 비현실감 사이에 놓여 있고, 강철은 완벽해 보이지만 자기 세계가 흔들릴 때 굉장히 날카로워집니다. 이때 이종석 특유의 차가운 얼굴이 꽤 잘 먹힙니다.
로맨스는 별책부록은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출판사를 배경으로 한 잔잔한 로맨스라 사건의 폭발력은 크지 않지만, 은호라는 캐릭터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이 부드럽게 쌓입니다. 빠른 전개를 좋아하면 심심할 수 있고, 생활감 있는 멜로를 좋아하면 꽤 편하게 볼 수 있어요.
장르물에서 더 선명해지는 얼굴
개인적으로 다시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쪽은 장르물입니다. 특히 빅마우스는 이종석의 이미지를 꽤 다르게 쓰는 작품이었어요. 초반의 박창호는 능력치가 애매한 변호사처럼 보이지만, 사건에 휘말리면서 얼굴이 점점 바뀝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액션보다 눈빛의 변화입니다.
물론 빅마우스는 전개 방식 때문에 의견이 많이 갈렸습니다. 초반 흡입력은 강한데, 뒤로 갈수록 인물들의 선택이나 사건 처리 방식에서 아쉬움을 느낀 시청자도 많았죠. 저도 모든 회차가 고르게 만족스럽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종석이 ‘선한 얼굴을 한 남자’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쉽게 읽히지 않는 남자’로 이동하는 과정은 볼 만했습니다.
닥터 이방인도 언급을 안 하긴 어렵습니다. 메디컬, 첩보, 멜로가 한꺼번에 들어가서 장르 톤이 꽤 바쁜 작품인데, 박훈 캐릭터 자체는 이종석의 장점과 잘 맞았습니다. 천재성, 외로움, 집요함을 동시에 보여줘야 하는 인물이라 배우의 에너지가 많이 필요했거든요.
처음 본다면 어떤 순서가 좋을까
이종석 작품을 처음 몰아보려는 분이라면 방영 순서보다 취향별로 고르는 게 훨씬 낫습니다. 감정선이 선명한 작품을 원하면 너의 목소리가 들려나 피노키오가 좋고, 설정이 독특한 드라마를 좋아하면 W가 잘 맞습니다. 가볍게 설레는 분위기를 원하면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무난합니다.
다만 스포를 피하고 싶다면 줄거리 검색은 조심하는 게 좋아요. 이종석 작품들은 초반 설정보다 중후반 반전, 관계 변화, 정체성의 흔들림이 재미를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W와 빅마우스는 인물 정보 하나만 알아도 긴장감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취향별 추천 코스
- 감정 진한 로맨스: 너의 목소리가 들려, 피노키오
- 설정 강한 판타지: W, 당신이 잠든 사이에
- 어두운 장르물: 빅마우스
- 편하게 보는 멜로: 로맨스는 별책부록
호불호가 갈려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
이종석의 장점은 캐릭터가 멋있는 순간보다 흔들리는 순간에 더 잘 보입니다. 대놓고 강한 인물보다, 강한 척하지만 속이 불안한 인물을 연기할 때 화면이 더 살아납니다. 그래서 어떤 작품은 이야기보다 배우의 얼굴 변화가 더 오래 남기도 합니다.
반대로 약점도 있습니다. 작품 선택이 설정 강한 드라마에 자주 닿다 보니, 대본이 흔들리면 캐릭터까지 같이 흔들려 보일 때가 있어요. 그래서 이종석 필모는 ‘배우가 별로냐’보다 ‘이 설정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만족도를 크게 가릅니다. 저는 그 점까지 포함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다시 몰아보고 나니, 이종석은 단순히 로맨스 남주 이미지로 가두기엔 꽤 다양한 얼굴을 가진 배우였습니다. 달달한 장면만 골라 보는 것도 좋지만, 상처 입은 인물이 버티는 장면까지 같이 보면 이 배우가 왜 오래 기억되는지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