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임 임팔라 공연에서 제니가 튀어나온 순간을 따라가 봤더니

얼마 전 페스티벌 영상들을 연달아 보다가 테임 임팔라와 제니 이름이 같이 붙은 클립을 보고 잠깐 멈췄다. 조합만 보면 살짝 낯설다. 호주 사이키델릭 팝의 대표 이름인 케빈 파커, 그리고 블랙핑크 제니라니. 그런데 막상 흐름을 따라가 보니 이건 단순한 화제성 콜라보라기보다, 요즘 팝 시장이 얼마나 장르 경계를 빨리 허물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에 가까웠다.
처음엔 진짜 깜짝 카드처럼 보였다
제니가 테임 임팔라의 ‘Dracula’ 리믹스에 참여한다는 소식은 2026년 2월 초에 먼저 나왔다. Billboard Philippines 보도에 따르면 리믹스 공개일은 2026년 2월 6일로 예고됐고, 케빈 파커가 짧은 티저를 올리면서 팬들 사이에서 바로 말이 돌았다. 원곡 뮤직비디오 설명란의 가사 변화 같은 작은 힌트도 있었고, 그래서 더 ‘갑자기 열린 문’ 같은 느낌이 강했다. 참고: https://billboardphilippines.com/music/news/jennie-tame-impalas-remix-dracula-2026/
테임 임팔라를 오래 들은 사람이라면 케빈 파커 특유의 몽롱한 신스, 뒤로 밀리는 듯한 보컬, 반복되는 그루브를 먼저 떠올릴 텐데, 제니는 그 위에 훨씬 또렷한 팝 스타의 존재감을 얹는다. 이게 취향에 따라 꽤 갈릴 수 있다. 원곡의 흐릿하고 눅진한 분위기를 좋아한 사람에겐 제니 파트가 너무 선명하게 느껴질 수 있고, 반대로 K팝식 캐릭터감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곡이 더 입체적으로 들릴 수 있다.
Mad Cool 2026 무대에서 체감된 포인트
NME는 제니가 2026년 7월 9일 스페인 마드리드 Mad Cool Festival에서 17곡짜리 솔로 세트를 펼쳤고, 그 안에서 ‘Dracula’ 리믹스를 공연했다고 전했다. 이 대목이 흥미로운 건 테임 임팔라 공연에 제니가 직접 난입한 식의 장면이라기보다, 테임 임팔라의 곡이 제니의 솔로 무대 안으로 들어오면서 전혀 다른 관객 경험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참고: https://www.nme.com/news/music/watch-jennie-perform-epic-remix-of-tame-impalas-dracula-at-mad-cool-2026-3956312
무대 구성도 꽤 노골적으로 ‘팝 쇼’ 쪽이었다. NME 보도에 따르면 제니는 거대한 디스코볼 비주얼 앞 계단에서 등장했고, 댄서들과 함께 움직이며 곡을 끌고 갔다. 테임 임팔라의 음악을 떠올리면 밴드 사운드와 조명, 환각적인 영상이 먼저인데, 제니 버전은 몸의 움직임과 스타 이미지가 전면에 선다. 같은 곡인데 보는 재미의 중심축이 바뀌는 셈이다.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도 분명하다
솔직히 이 조합은 모두가 곧장 좋아할 타입은 아니다. 테임 임팔라 팬덤 안에는 케빈 파커의 폐쇄적이고 몽환적인 사운드 결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입장에서는 제니의 등장이 상업적인 팝 문법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협업 발표 당시 일부 반응이 날카로웠다는 보도도 있었다. 근데 그 반발 자체가 이 콜라보의 위치를 보여준다. 너무 자연스러웠다면 이렇게 크게 흔들리지도 않았을 테니까.
반대로 제니 팬 입장에서는 꽤 영리한 선택이다. 제니가 단순히 K팝 솔로 싱글만 밀고 가는 대신, 얼터너티브 팝과 사이키델릭 계열의 감각을 빌려오면서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결을 넓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2025년 솔로 앨범 ‘Ruby’ 이후 무대에서 ‘Mantra’, ‘Like Jennie’, ‘Love Hangover’ 같은 곡을 가져가면서도 ‘Dracula’를 끼워 넣은 건, 본인의 무대 문법 안에 협업곡을 흡수하겠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공연 리뷰어 시선에서 건진 관전 포인트
- 첫째, 이 무대는 곡보다 ‘맥락’이 더 재밌다. 테임 임팔라 원곡을 아는 사람과 제니 솔로 무대만 보는 사람이 완전히 다른 입구로 들어온다.
- 둘째, 제니의 보컬과 퍼포먼스는 곡의 어두운 질감을 더 패션 쇼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게 장점이자 약점이다.
- 셋째, 케빈 파커식 사운드가 이제 인디 감성 안에만 머물지 않고 글로벌 팝의 재료로 계속 재가공되고 있다는 점이 보인다.
- 넷째, ‘깜짝 등장’이라는 말이 잘 먹히는 이유는 실제 무대 난입보다도 예상 밖의 이름 조합이 주는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내 취향엔 꽤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개인적으로는 원곡의 질척한 사이키델릭 무드가 더 취향이긴 하다. 테임 임팔라는 곡이 살짝 풀린 듯 흘러갈 때 매력이 큰데, 제니가 들어오면 곡의 초점이 또렷해진다. 그래서 처음엔 조금 낯설었다. 근데 두세 번 다시 보니 그 또렷함 때문에 라이브 클립으로는 훨씬 잘 남는다. 페스티벌 무대에서 관객을 붙잡는 힘은 확실히 다르다.
드라마로 치면 원작 팬들이 좋아하던 어두운 톤의 작품에 인기 배우가 특별출연해서 분위기를 확 바꿔놓은 느낌이다. 원래의 맛이 흐려졌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고, 덕분에 작품이 더 넓은 관객에게 닿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거다. 나는 후자 쪽에 조금 더 기운다. 완벽하게 매끈한 조합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세계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서 더 기억에 남는 무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