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콘서트 정주행해봤더니, 노래보다 오래 남은 장면들

얼마 전 아이유 콘서트 영상을 몰아서 보다가, 이건 그냥 공연이 아니라 한 편의 시즌제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작은 분명 노래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무대 동선, 관객 반응, 멘트 타이밍, 앵콜의 분위기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드라마 정주행할 때 회차마다 감정선이 쌓이는 것처럼, 아이유 콘서트도 노래 하나하나가 장면처럼 배치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공연 규모부터 이미 서사가 있다
아이유의 2024년 월드투어 HEREH는 서울에서 시작해 여러 도시를 거친 뒤 상암 앙코르 공연으로 이어졌습니다. 보도 기준으로 18개 도시, 31회 공연이라는 숫자가 붙었고, 9월 21일과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앙코르 공연은 이 투어의 큰 장면처럼 남았죠. 특히 여성 솔로 가수의 대형 스타디움 공연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객석이 많았다 정도로 끝낼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콘서트 규모가 커지면 감동도 커질 것 같지만, 반대로 거리감이 생기기도 해요. 멀리 앉은 관객은 표정이 잘 안 보이고, 소리의 딜레이도 느껴질 수 있고, 무대가 너무 커서 시선이 흩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유 콘서트가 흥미로운 건 그 거리감을 줄이려는 장치들이 꽤 세심하게 들어간다는 점이에요. 상암 공연에서 관객에게 망원경과 방석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 오래 회자됐습니다. 팬서비스라는 말로만 묶기엔 꽤 현실적인 배려였거든요.
셋리스트가 회차 구성처럼 느껴지는 이유
아이유 콘서트를 정주행하듯 보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셋리스트의 흐름입니다. 밝고 리듬감 있는 곡으로 문을 열고, 중간에는 익숙한 히트곡으로 관객을 단단히 붙잡고, 후반으로 갈수록 감정의 밀도를 올리는 방식이 자주 보입니다. 드라마로 치면 초반 1~2화에서 세계관을 열고, 중반부에서 캐릭터 관계를 넓힌 뒤, 후반부에서 마음을 세게 건드리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홀씨’, ‘어푸’, ‘삐삐’ 같은 곡은 공연 초반의 공기를 가볍게 띄우는 데 잘 어울립니다. 반면 ‘밤편지’, ‘너의 의미’, ‘Love wins all’ 같은 곡은 객석의 집중도가 확 달라지는 구간이죠. 아이유의 장점은 여기서 과하게 울리려고만 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감정적인 곡을 부르더라도 바로 다음 장면에서 말투를 풀거나, 관객과 장난스럽게 호흡하면서 분위기를 다시 움직이게 합니다.
- 초반부: 리듬감과 등장감으로 공연의 문을 여는 구간
- 중반부: 대중적으로 익숙한 곡들이 관객 전체를 묶는 구간
- 후반부: 보컬과 가사 전달력이 크게 부각되는 구간
- 앵콜: 팬들과의 관계성이 가장 진하게 드러나는 구간
관전 포인트는 화려함보다 ‘거리 조절’
솔직히 아이유 콘서트가 무대 장치만으로 승부하는 공연은 아니라고 봅니다. 대형 스크린, 조명, 와이어, 밴드 사운드 같은 요소도 물론 중요하지만, 진짜 관전 포인트는 아이유가 관객과의 거리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있어요. 스타디움급 공연인데도 동네 친구처럼 말을 건네는 순간이 있고, 그러다가 노래가 시작되면 다시 아주 멀리 있는 가수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 간극이 꽤 매력적입니다.
특히 멘트가 길어지는 편인데도 늘어지는 느낌이 덜한 이유가 있습니다. 말의 내용이 팬들에게만 통하는 암호처럼 닫혀 있지 않고, 처음 보는 사람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는 생활감이 있어요. 공연을 현장에서 보지 않고 영상으로 접해도 ‘아, 이 사람은 관객을 한 덩어리로만 보지 않는구나’ 싶은 순간이 생깁니다. 그게 아이유 콘서트의 온도라고 느꼈습니다.
호불호가 갈릴 만한 지점도 있다
물론 모두에게 완벽하게 맞는 공연은 아닐 수 있습니다. 아이유 콘서트는 곡과 곡 사이의 감정선을 꽤 중요하게 다루는 편이라, 빠른 전개와 강한 퍼포먼스만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중간 구간이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또 팬덤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앵콜이나 떼창 분위기가 살짝 낯설 수도 있습니다. 이건 단점이라기보다 취향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근데 저는 오히려 그 느린 구간이 아이유 공연의 개성이라고 봤습니다. 모든 순간을 폭발시키려고 하면 대형 공연은 쉽게 피곤해지거든요. 아이유 콘서트는 크게 터지는 장면과 조용히 듣는 장면의 대비가 살아 있어서, 오래 보고 나면 특정 고음보다 특정 표정이나 멘트가 더 생각나는 타입입니다. 이건 예능으로 치면 웃긴 장면보다 출연자의 진짜 성격이 보이는 순간이 더 오래 남는 것과 비슷합니다.
입문자라면 이렇게 보면 더 재밌다
아이유 콘서트를 처음 접한다면 무작정 유명 무대 클립만 보는 것보다, 공연의 순서를 어느 정도 따라가며 보는 쪽이 훨씬 좋습니다. 왜 이 곡이 앞에 있고, 왜 이 곡 뒤에 멘트가 붙었는지 보이기 시작하면 감상이 달라져요. 그냥 ‘노래 잘한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공연 전체를 설계하는 방식이 보입니다.
- 먼저 오프닝 곡의 분위기를 본다
- 중반 히트곡 구간에서 객석 반응을 같이 본다
- 발라드 구간은 가사 전달과 호흡을 중심으로 듣는다
- 앵콜은 팬들과의 대화 방식까지 함께 본다
개인적으로 아이유 콘서트는 ‘가창력 좋은 가수의 무대’보다 ‘오래 활동한 사람이 자기 세계를 관객과 나누는 방식’에 더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드라마나 예능을 정주행하듯 따라가면 더 재밌어요. 화려한 장면만 골라 보는 맛도 있지만, 앞뒤 흐름까지 이어서 보면 왜 사람들이 공연 후기를 길게 쓰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저는 다음 공연도 셋리스트 순서부터 괜히 신경 쓰게 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