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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전시 다녀왔더니, 그림보다 오래 남은 건 그 불편한 장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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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전시 다녀왔더니, 그림보다 오래 남은 건 그 불편한 장면들이었다

고야 전시, 생각보다 훨씬 드라마틱했다

얼마 전 고야 전시를 보고 왔는데,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명화 전시니까 교양 있게 보고 오자’ 정도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분위기가 꽤 달랐다. 예쁜 그림을 천천히 감상하는 전시라기보다, 한 인간이 시대를 버티며 남긴 장면들을 따라가는 느낌에 가까웠다.

드라마로 치면 초반은 궁정극처럼 시작한다. 화려한 초상화, 귀족들의 표정, 옷감의 질감, 권력자들의 포즈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회차가 넘어갈수록 장르가 바뀐다. 풍자극이 됐다가, 전쟁물처럼 날카로워지고, 어느 순간 심리 스릴러 같은 어둠이 확 밀려온다. 그래서 고야 전시는 그림을 ‘예쁘다’로만 보면 조금 아쉽고, 인물과 시대의 감정선을 같이 따라가야 훨씬 재밌다.

고야가 왜 지금 봐도 세게 느껴지는지

고야는 1746년에 태어나 1828년에 세상을 떠난 스페인 화가다. 숫자로 보면 18세기와 19세기 사이를 산 인물인데, 작품을 보면 묘하게 현대적이다. 사람을 이상화해서 그리기보다, 그 사람 안에 있는 불안함이나 욕망, 체면 같은 걸 그대로 드러내는 쪽에 가깝다.

특히 초상화를 보면 그게 확 느껴진다. 보통 왕족이나 귀족 초상화는 ‘멋있게 만들어주는’ 그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고야의 인물들은 어딘가 불편하다. 눈빛이 비어 보이기도 하고, 표정이 애매하게 굳어 있기도 하다. 겉으로는 권위를 갖췄는데, 안쪽은 흔들리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 지점이 드라마 캐릭터 보는 맛과 닮았다. 대사 한 줄 없이도 ‘저 사람 뭔가 있다’는 느낌이 오는 것이다.

고야 전시에서 좋았던 건, 작품을 시간순으로 보거나 주제별로 따라가다 보면 화가의 시선이 점점 바뀌는 게 보인다는 점이다. 처음엔 사회 안쪽에서 주문을 받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뒤로 갈수록 사회를 멀찍이 떨어져 보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궁정의 화려함, 민중의 고통, 전쟁의 잔혹함, 인간 내면의 어두움이 같은 사람의 손에서 나왔다는 게 꽤 강하게 남는다.

관전 포인트는 ‘예쁜 그림’보다 표정과 분위기

고야 전시를 볼 때는 작품 앞에서 너무 빨리 지나가지 않는 게 좋다. 특히 인물의 얼굴을 먼저 보고, 그다음 손, 자세, 배경을 보면 재미가 생긴다. 예능에서 출연자 표정 하나로 상황이 뒤집히는 순간이 있듯이, 고야 그림도 표정이 많은 걸 말한다.

  • 초상화에서는 인물이 자신을 어떻게 보이고 싶어 하는지 보기
  • 풍자적인 작품에서는 우스꽝스러움 뒤의 씁쓸함 느끼기
  • 전쟁 관련 작품에서는 장면의 잔혹함보다 시선의 차가움 보기
  • 어두운 작품에서는 괴물보다 인간의 불안에 집중하기

사실 고야의 작품은 친절하지 않다. ‘이 장면은 이런 뜻입니다’ 하고 또렷하게 말해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처음 보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근데 그 불친절함이 오히려 오래 간다. 전시장을 나와서도 특정 얼굴이나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그게 고야의 힘 같다.

호불호는 분명히 갈릴 수 있다

솔직히 고야 전시는 데이트 코스로 가볍게 보기엔 조금 무거울 수 있다. 밝고 산뜻한 전시를 기대했다면 중반 이후부터는 기분이 가라앉을 수도 있다. 특히 전쟁, 폭력, 광기, 죽음 같은 이미지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피로감이 올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드라마나 예능을 볼 때도 사람의 속내, 사회 풍자, 불편한 감정선에 끌리는 편이라면 꽤 만족도가 높을 것 같다. 고야는 착한 주인공만 보여주는 작가가 아니다. 권력자도 이상하게 만들고, 대중도 순진하게만 그리지 않는다. 인간을 조금 삐딱하게 보는데, 그 삐딱함이 단순한 냉소가 아니라 관찰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이 지점이 가장 좋았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기분 좋아지는 전시도 좋지만, 가끔은 ‘나는 저 장면을 왜 불편하게 느꼈지?’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전시가 더 오래 남는다. 고야 전시는 딱 그런 쪽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보면 덜 어렵다

고야를 처음 접한다면 작가의 전체 생애를 전부 외우려 하기보다, 세 가지 흐름만 잡고 보면 편하다. 첫째, 궁정과 초상화의 세계. 둘째, 풍자와 사회 비판. 셋째, 전쟁과 내면의 어둠이다. 이 순서로 보면 전시가 하나의 긴 서사처럼 보인다.

전시 설명문도 너무 숙제처럼 읽을 필요는 없다. 작품을 먼저 보고, 내가 받은 느낌을 떠올린 뒤 설명을 읽으면 훨씬 잘 들어온다. 예를 들어 ‘왜 이 사람은 이렇게 불안해 보이지?’ 하고 본 다음 해설을 읽으면, 시대 배경이나 인물 관계가 더 또렷하게 붙는다.

그리고 가능하면 관람 시간은 넉넉하게 잡는 쪽이 좋다. 고야 작품은 이미지가 강해서 연달아 많이 보면 쉽게 지친다. 중간중간 한두 작품 앞에서 멈춰 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전부 다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는 작품 몇 점을 남기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보고 나면 기분이 산뜻하진 않지만, 이상하게 계속 생각난다

고야 전시의 매력은 보고 나서 바로 ‘좋았다’고만 말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어떤 작품은 멋지고, 어떤 작품은 불편하고, 또 어떤 작품은 무섭다. 그런데 그 감정들이 뒤섞이면서 전시 전체가 꽤 진하게 남는다.

드라마로 비유하면, 고야 전시는 편하게 틀어놓는 힐링물보다는 보고 난 뒤 친구랑 한참 얘기하고 싶은 작품에 가깝다. 인물은 왜 저렇게 그려졌는지, 시대는 왜 저렇게 망가졌는지, 인간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같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래서 나는 고야 전시를 ‘예술 교양 코스’라기보다, 사람과 시대의 어두운 얼굴을 마주 보는 시간으로 기억하게 됐다. 취향은 탈 수 있지만, 그림 앞에서 오래 멈춰 서는 경험을 좋아한다면 꽤 강하게 남을 전시다.

고야 전시 다녀왔더니, 그림보다 오래 남은 건 그 불편한 장면들이었다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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