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IU HEREH WORLD TOUR CONCERT ENCORE THE WINNING 보고 나서 오래 남은 순간들

얼마 전 아이유 콘서트 영상을 몰아서 다시 봤는데, 이상하게 무대가 끝난 뒤보다 시작하기 전의 공기가 더 오래 남더라고요. 특히 2024 IU HEREH WORLD TOUR CONCERT ENCORE THE WINNING은 그냥 앙코르 공연이라기보다, 한 해 동안 쌓인 투어의 감정선을 크게 펼쳐놓은 느낌이 강했습니다.
아이유 공연은 늘 노래를 잘한다는 말만으로는 조금 부족해요. 라이브 안정감, 세트리스트 흐름, 팬들과 주고받는 말, 무대 장치까지 다 합쳐서 하나의 긴 이야기처럼 굴러가거든요. 그래서 드라마 정주행하듯 보면 더 재밌습니다. 1막에서 분위기를 잡고, 중반에 감정을 확 끌어올렸다가, 뒤로 갈수록 관객과의 관계가 전면에 나오는 식이죠.
제목부터 이미 팬들에게 보내는 답장 같았다
HEREH라는 이름은 처음 들으면 조금 낯설 수 있는데, 공연 전체를 보고 나면 꽤 잘 맞는 단어처럼 느껴집니다. ‘여기에 있었다’는 감각이랄까요. 화면 밖 관객까지 그 자리에 같이 앉혀놓는 힘이 있습니다.
거기에 THE WINNING이라는 부제가 붙으면서 분위기가 더 또렷해졌어요. 단순히 화려하게 이겼다는 느낌보다는, 오래 버티고 쌓아온 사람이 자기 방식으로 도착한 무대에 가깝습니다. 아이유가 데뷔 후 쌓아온 이미지가 워낙 다양하잖아요. 국민 여동생, 싱어송라이터, 배우, 공연형 아티스트. 이 공연은 그 여러 얼굴을 하나씩 꺼내놓고 “이게 지금의 나야”라고 말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세트리스트는 감정 온도를 잘 계산한 편
아이유 공연을 볼 때 제일 재밌는 건 곡 배치입니다. 히트곡을 많이 넣는 건 당연한데, 문제는 순서거든요. 너무 초반부터 유명곡을 몰아치면 뒤가 허전하고, 반대로 너무 아껴두면 초반 몰입이 늦어집니다.
이번 공연은 그 균형이 꽤 좋았습니다. 팬들이 기다리는 대표곡의 반가움도 있고, 최근 음악의 결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밝고 경쾌한 곡에서는 공연장이 확 열리고, 발라드나 서정적인 곡으로 넘어가면 관객 호흡이 조용히 가라앉습니다. 이 완급 조절이 아이유 콘서트의 진짜 장점이라고 봐요.
특히 라이브에서 진가가 드러나는 곡들은 음원으로 들을 때보다 훨씬 입체적입니다. 아이유는 고음을 크게 과시하는 타입이라기보다, 가사를 또렷하게 밀어 넣는 보컬에 강한 편이라서요. 한 글자씩 감정을 실어 보내는 순간들이 있고, 그게 큰 공연장에서도 흐려지지 않습니다.
화려한데 과하게 밀어붙이지 않는 무대
대형 콘서트는 자칫하면 무대 장치가 가수를 삼켜버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조명, 영상, 폭죽, 이동 무대가 계속 나오면 보는 맛은 있는데 노래가 뒤로 밀리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이 공연은 큰 규모를 쓰면서도 중심이 아이유에게 남아 있었습니다.
물론 웅장한 장면도 있습니다. 넓은 공간을 꽉 채우는 연출, 관객석까지 이어지는 떼창, 카메라가 잡아주는 표정들이 합쳐지면 확실히 “아, 이건 앙코르구나” 싶은 맛이 나요. 그런데 동시에 작은 표정, 말끝, 노래 사이의 숨도 놓치지 않으려는 구성이 보입니다.
솔직히 무대가 너무 예쁘게 포장된 공연은 감정이 덜 들어올 때도 있는데, 여기서는 그 반대였습니다. 큰 그림은 큰 그림대로 있고, 팬들이 좋아할 디테일은 디테일대로 살아 있습니다. 오래 따라온 팬일수록 알아차릴 만한 순간들이 꽤 많았을 거예요.
입문자와 팬의 반응이 조금 다를 수 있다
다만 이 공연이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꽂히는 타입은 아닐 수 있습니다. 아이유의 음악사를 어느 정도 알고 보면 훨씬 깊게 들어오는 장면이 많거든요. 특정 곡이 왜 이 타이밍에 나오는지, 멘트가 왜 그렇게 들리는지, 팬들이 왜 거기서 크게 반응하는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체감 차이가 있습니다.
- 아이유의 대표곡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꽤 만족스러운 정주행용 공연입니다.
- 라이브 보컬과 관객 호흡을 중요하게 보는 사람에게 잘 맞습니다.
- 빠른 전개와 강한 퍼포먼스만 기대하면 중간부가 차분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 팬 서사가 낯선 입문자라면 공연 전후 맥락을 조금 알고 보는 편이 더 좋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 팬 서사 때문에 이 공연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단순히 노래 잘하는 가수의 무대가 아니라, 긴 시간 같은 방향을 바라본 사람들과 다시 만나는 자리처럼 보였거든요.
다시 보게 되는 건 결국 사람 때문
드라마도 그렇고 예능도 그렇고, 오래 기억나는 작품은 사건보다 사람이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공연도 비슷했어요. 노래 제목이나 무대 장면보다, 아이유가 관객을 바라보는 방식이 먼저 떠오릅니다.
공연을 정주행하듯 보고 나면 아이유라는 아티스트가 왜 오래 사랑받는지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곡이 좋아서, 목소리가 좋아서, 무대가 예뻐서도 맞지만 그것만은 아니에요. 자기 이야기를 너무 크게 포장하지 않으면서도, 듣는 사람의 기억 안으로 조용히 들어오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2024 IU HEREH WORLD TOUR CONCERT ENCORE THE WINNING은 팬이라면 당연히 반갑고, 아이유 공연을 제대로 본 적 없는 사람에게도 꽤 괜찮은 출발점이 될 만합니다. 화려함과 다정함이 같이 있고, 큰 공연장 안에서도 이상하게 가까운 목소리가 남는 공연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무대가 제일 좋더라고요. 보고 나면 괜히 예전 곡까지 다시 찾아 듣게 되는 그런 공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