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빵 황지오 대역전 우승이 오래 남았다

서바이벌 예능을 보다 보면 마지막 점수 발표보다 그 전에 쌓인 선택들이 더 오래 기억날 때가 있다. MBN ‘천하제빵’의 황지오가 그랬다. 결승 1차전 4위에서 출발해 초대 우승자가 된 결과도 짜릿했지만, 마지막에 어떤 빵을 만들기로 했는지가 더 흥미로웠다. 아래에는 결승 결과와 작품 이야기가 나온다. 아직 최종회를 아껴두고 있다면 여기서 멈추는 편이 좋겠다.
4위에서 시작한 결승, 점수 차가 만든 긴장감
결승 1차전이 끝났을 때 선두는 556점을 받은 김시엽이었다. 황지오는 532점으로 4위. 24점 차라면 충분히 뒤집을 수 있지만, 앞에 세 사람이 있는 상황이라 마음 편한 위치도 아니었다. 게다가 1위와 7위의 차이가 51점에 불과했다. 마지막 한 번의 승부가 순위를 크게 바꿀 수 있는 판이었다.
이 지점이 ‘대역전’이라는 말에 설득력을 준다. 처음부터 압도적인 1위가 우승했다면 실력은 보여줘도 드라마는 덜했을 것이다. 황지오는 이미 앞선 경연에서 존재감을 보였지만, 결승에서는 다시 자기 작품으로 점수를 따내야 했다. 이전 라운드의 기세만으로 버틸 수 없는 구조였다는 얘기다.
저는 이런 경연에서 중간 순위가 공개되는 순간을 좋아한다. 누가 앞서는지 알게 되면 다음 작품을 보는 눈도 달라지니까. 김시엽에게는 선두를 지켜야 하는 부담이, 황지오에게는 따라잡아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숫자 몇 개가 도전자들의 선택을 보는 재미까지 바꿔놓았다.
‘할머니의 마당’이 기억에 남은 이유
결승 2차전의 과제는 자신을 담은 단 하나의 작품을 4시간 안에 완성하는 것이었다. 황지오는 ‘할머니의 마당’을 내놓았다. 할머니 댁 마당에서 접한 감을 자신의 첫 디저트에 가까운 기억으로 꺼내고, 그 풍경을 작품으로 옮겼다. 나무 아래 놓인 감을 형상화한 구성이라 이야기를 듣기 전에도 시선이 갔다.
가족의 추억을 가져오는 방식은 경연 프로그램에서 낯설지 않다. 그래서 감동적인 사연만 앞섰다면 조금 뻔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기억 속 과일이 실제 맛의 중심에도 있었다. 방송에서 심사위원들은 과일 향과 단맛의 균형, 홍시와 단감의 식감을 좋게 평가했다. ‘할머니’라는 말이 점수를 대신 받은 게 아니라, 그 기억을 어떻게 먹을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는지가 평가받은 셈이다.
특히 감이라는 재료가 좋았다. 누구나 한 번쯤 먹어봤을 만큼 친숙한데, 화려한 결승 무대의 주인공으로는 쉽게 떠올리지 않는 과일이다. 익숙한 맛을 얼마나 섬세하게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지, 그게 황지오 작품의 관전 포인트였다. 화면으로 보는 시청자는 직접 맛볼 수 없으니 실제 식감까지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심사평과 작품의 모양, 설명이 서로 맞물리는 장면은 꽤 설득력 있었다.
765점이 뒤집은 순위와 다른 결승작들
황지오는 2차전에서 765점을 받았다. 1차전 532점을 더한 최종 점수는 1297점. 김시엽의 1262점보다 35점 높았다. 1차전에서는 김시엽에게 24점 뒤졌으니, 마지막 작품에서 벌린 차이가 역전의 이유였다. ‘기적 같은 우승’이라고만 부르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결과를 바꾼 것은 결국 결승 무대에 올린 작품이었다.
그렇다고 김시엽의 결승이 희미해지는 건 아니다. 그는 1차전 선두였고, 마지막에는 꿈과 열정을 담은 ‘시엽드림’을 선보였다. 윤화영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몽빵드비’, 이경무는 ‘태극 팥빵’을 내놨다. 도전자마다 자기 이야기를 빵에 싣는 방식이 달라서, 최종회는 단순히 황지오의 추격전으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솔직히 제 취향에는 이 대목이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자 호불호가 갈릴 지점이다. 빵의 제조 과정과 기술 대결을 길게 보고 싶다면 사연과 발표에 시간이 쓰이는 구성이 아쉬울 수 있다. 반대로 사람마다 왜 이런 맛을 만들었는지 궁금한 시청자라면 결승의 이야기가 작품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저는 두 쪽 모두 이해하지만, 이번에는 ‘할머니의 마당’이 사연을 맛의 선택으로 이어갔다는 점에서 마음이 갔다.
우승 발표 뒤에도 남은 장면
황지오가 우승자로 호명된 뒤, 제게 오래 남은 건 상금이나 부상보다 그의 소감이었다. 그는 파티시에의 길이 어려웠던 순간을 말하며 김나래 마스터가 자신에게 등대 같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작은 불빛이 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경쟁 상대를 이긴 직후에 자신이 받은 도움을 먼저 떠올리는 모습이어서, 앞서 보여준 ‘할머니의 마당’과도 묘하게 이어졌다.
물론 이런 순간은 편집의 힘을 빼고 볼 수 없다. 경연 예능은 점수 공개 순서와 반응 화면만으로도 감정을 크게 움직인다. 그래서 방송의 감동을 작품의 맛에 대한 절대적인 증거로 받아들이지는 않으려 한다. 다만 황지오의 경우에는 1차전 4위, 2차전 765점, 최종 35점 차라는 결과가 분명하다. 감정적인 장면을 걷어내도 역전의 흐름 자체는 탄탄하다.
‘천하제빵’ 최종회를 다시 떠올리면 우승자의 이름보다 감을 고른 선택이 먼저 생각난다. 더 낯설고 화려한 재료를 내세울 수도 있었을 텐데, 황지오는 가장 오래 품고 있던 맛을 결승까지 가져왔다. 저는 그 선택이 이 역전승을 숫자 이상의 이야기로 남겼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