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쇼츠
한국의 모든이야기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를 천천히 따라가 봤더니, 산이 풍경보다 마음에 가까웠다

Last Updated :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를 천천히 따라가 봤더니, 산이 풍경보다 마음에 가까웠다

얼마 전 유영국의 그림을 이어서 보다가 이상하게 오래 멈춘 순간이 있었어요. 분명 화면에는 산이 있고, 색면이 있고, 선이 있는데 막상 보고 있으면 풍경화라기보다 사람 마음의 온도표를 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라는 문장을 붙잡고 다시 보니, 이건 단순히 한 화가의 산 그림 이야기가 아니라 오래 버틴 사람이 자기 안의 형태를 찾아가는 이야기처럼 다가왔습니다.

산을 그렸는데 풍경보다 사람이 먼저 보인다

유영국은 한국 추상미술을 이야기할 때 빠지기 어려운 이름이죠. 1916년에 태어나 2002년까지 활동했고, 특히 산이라는 대상을 반복해서 자기만의 색과 구조로 밀고 간 작가로 많이 기억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건 산을 산답게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나무, 계곡, 구름 같은 디테일을 덜어내고 삼각형, 면, 선, 강한 색의 관계로 바꿔놓습니다.

처음 보면 “이게 왜 산이지?” 싶을 수 있어요. 근데 조금만 더 보고 있으면 알게 됩니다. 산이라는 대상이 사라진 게 아니라, 더 단단한 뼈대만 남은 것 같다는 걸요. 실제 산을 찍은 사진과 비교하면 유영국의 산은 훨씬 덜 친절합니다. 대신 훨씬 오래 남아요. 파란색 하나, 붉은 면 하나가 그냥 색이 아니라 산을 올려다볼 때의 압박감, 해가 기울 때의 긴장감, 혼자 걷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는 순간을 건드리거든요.

‘내 안에 있다’는 말이 과하지 않은 이유

솔직히 예술가의 말을 붙인 제목들은 가끔 멋있게 들리려고 과장된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데 ‘산은 내 안에 있다’는 문장은 유영국에게 꽤 잘 맞습니다. 그는 바깥의 산을 복사한 게 아니라, 산을 오래 보고 난 뒤 자기 안에 남은 구조를 다시 그린 사람에 가깝거든요.

드라마로 치면 사건을 크게 터뜨리는 타입이 아니라, 한 인물이 같은 장소를 계속 지나가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내면을 보여주는 작품에 가까워요. 예능으로 비유하면 빠른 편집과 자막으로 웃기는 프로그램보다는, 출연자가 오래 앉아 있다가 툭 던지는 말 한마디가 계속 생각나는 관찰형 콘텐츠 쪽이고요. 그래서 보는 속도를 늦춰야 재미가 생깁니다.

  • 강렬한 원색은 감정의 높낮이처럼 보입니다.
  • 반복되는 삼각형 구도는 산의 형태이면서 마음의 중심축처럼 느껴집니다.
  • 여백과 색면의 충돌은 조용한데 은근히 긴장감이 있습니다.
  • 같은 산을 반복하는 방식은 집착보다 수행에 가깝게 다가옵니다.

호불호는 분명히 갈릴 수 있다

근데 모든 사람이 바로 좋아할 작품은 아니에요. 유영국의 그림은 친절한 서사가 적습니다. 인물도 없고, 대사도 없고, 누가 봐도 감동 포인트가 딱 찍히는 장면도 없습니다. 드라마로 치면 1화부터 떡밥이 쏟아지는 장르물이 아니라, 3화쯤 지나야 인물의 호흡이 들어오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빠르게 자극을 찾는 관객에게는 조금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그래서 뭘 말하려는 거야?”라는 반응도 충분히 이해돼요. 다만 저는 그 불친절함이 단점으로만 보이진 않았습니다. 요즘 콘텐츠가 너무 많은 설명을 붙여주다 보니, 오히려 아무 말 없이 색과 형태만으로 버티는 화면이 낯설게 신선했거든요.

반대로 색감, 구도, 반복되는 모티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꽤 깊게 빠질 수 있습니다. 작품을 한 점씩 보는 것보다 여러 점을 이어서 볼 때 힘이 커져요. 처음엔 빨강과 파랑이 눈에 들어오고, 그다음엔 산의 윤곽이 보이고, 나중엔 ‘이 사람이 왜 계속 산으로 돌아왔을까’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이 질문이 생기면 이미 절반은 들어간 셈이에요.

드라마 보듯 따라가면 보이는 관전 포인트

유영국의 작업을 볼 때 저는 연대기만 붙잡기보다, 한 인물이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성장 서사처럼 보는 게 더 재미있었습니다. 초반에는 실험하는 에너지가 있고, 시간이 갈수록 색과 형태가 더 단단해집니다. 큰 사건 대신 화면 내부의 밀도가 변하는 식이에요.

색이 감정을 대신 말한다

빨강, 노랑, 파랑 같은 색이 꽤 선명하게 등장하는데, 이게 장식처럼 쓰이지 않습니다. 빨강은 뜨겁고, 파랑은 차갑고, 노랑은 밝다는 식의 단순한 감상보다 조금 더 복잡해요. 어떤 작품에서는 파랑이 오히려 무겁고, 빨강이 외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색이 감정의 대사처럼 움직이는 셈이죠.

산은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이다

많은 그림에서 산은 뒤에 놓이는 배경인데, 유영국의 산은 화면을 끌고 가는 주인공처럼 버팁니다. 뾰족한 꼭대기, 겹치는 면, 단단한 윤곽이 계속 시선을 붙잡아요. 그래서 작품을 볼 때 “무슨 산일까”보다 “이 산은 어떤 상태일까”라고 보면 더 잘 들어옵니다.

조용하지만 은근히 극적이다

겉으로는 차분한 추상화인데, 면과 면이 맞물리는 부분에는 꽤 큰 긴장이 있습니다. 예능으로 치면 아무 일 없는 식탁 장면인데 출연자들 표정만으로 분위기가 바뀌는 순간과 비슷해요. 소리를 키우지 않는데도 화면 안에서 감정이 부딪힙니다.

천천히 보는 사람에게 더 많이 열리는 작품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산을 보는 일이 자기 안을 보는 일과 겹쳐집니다. 이게 조금 낯간지럽게 들릴 수도 있는데, 실제로 작품 앞에 서면 그 말이 꽤 현실적으로 느껴져요. 산은 움직이지 않지만 보는 사람의 상태는 계속 바뀌잖아요. 지친 날에는 무겁게 보이고, 기분이 좋은 날에는 색이 먼저 보이고, 마음이 복잡한 날에는 선의 경계가 유난히 날카롭게 들어옵니다.

저는 이런 작품이 좋은 이유가, 감상을 강요하지 않아서입니다. 울어야 할 지점도 없고, 감탄해야 할 장면도 정해져 있지 않아요. 대신 오래 보면 자기 속도가 생깁니다. 빠른 전개와 자극적인 반전이 많은 콘텐츠를 보다가 유영국의 산을 보면 처음엔 심심할 수 있지만, 어느 순간 그 심심함이 이상하게 편해집니다. 산이 화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보고 난 뒤에도 내 안에 남아 있는 느낌. 그 잔상이 이 작품의 가장 오래가는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를 천천히 따라가 봤더니, 산이 풍경보다 마음에 가까웠다 - 요약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를 천천히 따라가 봤더니, 산이 풍경보다 마음에 가까웠다 | 코리아쇼츠 korshort : https://korshort.com/210
한국의 모든이야기
코리아쇼츠 © korshort.com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modoo.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