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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보테로전을 다시 떠올리니 표정이 먼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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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보테로전을 다시 떠올리니 표정이 먼저 보였다

전시 포스터 속 보테로의 둥근 인물을 볼 때마다 처음엔 웃음부터 난다. 그런데 얼굴을 조금 더 보고 있으면 묘하게 조용해진다. 같은 그림 안에 유쾌함과 쓸쓸함이 함께 있는 느낌이다. 2026년 서울에서 열린 페르난도 보테로전을 떠올릴 때도 내 관심은 ‘얼마나 크게 그렸나’보다 ‘왜 저런 표정을 지을까’에 머문다. 드라마를 정주행할 때 인물의 첫인상이 뒤집히는 순간을 좋아한다면, 보테로의 그림도 비슷한 재미로 읽힌다.

둥근 얼굴에 웃고 들어갔다가 표정 앞에서 멈춘다

보테로 하면 누구나 풍만한 몸을 먼저 떠올린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과 과일, 주변 사물까지 부풀어 있다. 그래서 그림을 빠르게 넘기면 비슷비슷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몸의 크기에서 시선을 떼고 눈과 입을 보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인물들은 화면을 가득 채우는데도 표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화려한 옷을 입고 나란히 서 있어도 서로 마음이 멀어 보이는 순간이 있다.

나는 이 간격이 보테로 그림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예능에서 출연자들이 한껏 웃고 떠드는 장면보다, 대화가 끝난 뒤 잠깐 스치는 표정이 오래 남을 때가 있지 않나. 보테로의 화면도 첫눈에는 색과 형태가 눈에 들어오고, 다음에는 그 안의 어색한 침묵이 보인다. 귀여운 그림으로만 예상하고 갔다면 생각보다 감정의 온도가 낮게 느껴질 수 있다.

여섯 갈래로 이어진 작품 세계

예술의전당 안내에 따르면 2026년 페르난도 보테로전은 4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렸다. 보테로 재단이 고른 작품 112점을 변주, 라틴 아메리카, 종교, 투우, 정물, 서커스라는 여섯 갈래로 보여줬다. 유화와 드로잉, 조각을 함께 다룬 구성이다. 이미 끝난 전시라 지금 관람 일정을 잡을 수는 없지만, 이 구성을 알고 나면 보테로를 ‘둥글게 그리는 화가’라는 한 줄보다 훨씬 넓게 볼 수 있다.

드라마로 치면 같은 주인공이 장소와 상대역을 바꿔 가며 등장하는 셈이다. 정물에서는 사과와 병처럼 익숙한 물건의 비율이 낯설어지고, 서커스에서는 떠들썩한 소재와 인물의 담담한 태도가 부딪힌다. 투우나 종교를 다룬 그림 앞에서는 웃음만 기대했던 마음이 조금 복잡해진다. 주제가 바뀌어도 보테로 특유의 양감은 남아 있어서, 반복되는 스타일을 찾는 재미와 장면마다 달라지는 분위기를 느끼는 재미가 함께 있다.

볼륨을 몸매 이야기로만 읽으면 놓치는 것

보테로의 인물을 두고 ‘뚱뚱한 사람을 그린다’고 쉽게 말하곤 한다. 그런데 그 설명만으로는 과일도, 악기도, 공간 속 물건도 함께 커지는 이유를 말하기 어렵다. 보테로가 붙잡은 건 몸무게보다 형태의 부피와 화면을 채우는 감각에 가깝다. 실제 사람을 그대로 옮겼는지 따지기 시작하면 그림이 이상해 보이지만, 색과 곡선이 어떻게 균형을 잡는지 보면 그 과장이 자연스러워진다.

이 점은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섬세한 명암이나 사실적인 얼굴을 좋아한다면 비슷한 둥근 형태가 거듭되는 게 단조로울 수 있다. 반면 한 작가가 인물부터 정물까지 자기 방식으로 바꾸는 과정을 좋아한다면 오래 볼 여지가 많다. 내 취향은 후자 쪽이다. 특히 밝은 색 때문에 가볍게 다가갔다가, 화면을 꽉 채운 인물 사이의 거리감 때문에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는 그림이 흥미롭다.

가벼운 웃음 뒤에 남는 장면

보테로는 1932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태어나 2023년 세상을 떠났다. 2026년 서울 전시는 2015년 국내 전시 이후 11년 만에 그의 작품을 다시 한자리에 모은 자리였다. 그래서 한두 점의 유명한 이미지만 떠올리던 사람에게는 화가가 평생 어떤 장면을 반복해서 변주했는지 볼 기회이기도 했다. 사진으로 볼 때와 달리 회화와 조각을 함께 만나는 구성이라는 점도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다만 보테로에게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기분만 기대했다면 종교나 투우 같은 주제는 예상과 다르게 다가왔을 것이다. 나는 그 차이가 좋다. 처음에는 둥근 선이 반갑고, 조금 지나면 무표정한 얼굴이 궁금해진다. 다 보고 난 뒤에도 선뜻 웃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그림이 남는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끝까지 본 뒤 초반의 작은 표정을 다시 떠올리듯, 보테로의 그림도 첫인상보다 두 번째 시선에서 더 오래 머문다.

페르난도 보테로전을 다시 떠올리니 표정이 먼저 보였다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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