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유미의 세포들을 보고 드라마를 다시 떠올렸다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을 다시 볼 때마다 유미가 말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머릿속에서 얼마나 시끄러운 회의가 열리는지 웃게 된다. 그래서 뮤지컬 소식을 들었을 때도 제일 궁금한 건 구웅과의 연애보다 세포들이었다. 화면에서는 작은 캐릭터들이 귀엽게 뛰어다녔는데, 무대에서는 그 소란을 어떻게 보여줄까. 이 작품은 그 질문에서 출발하면 훨씬 재미있다.
유미의 연애보다 먼저 보이는 세포들의 회의
이동건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은 2026년 여름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초연됐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익숙하다. 평범한 직장인 유미의 일상과 연애, 그리고 그때마다 바빠지는 머릿속 세포마을이다. 남자친구 구웅과의 관계에 새이가 끼어들면서 유미의 마음도 흔들린다. 여기까지는 공개된 시놉시스에서 알 수 있는 내용이라, 뒤에 벌어지는 선택은 적지 않겠다.
드라마를 정주행한 사람이라면 유미의 표정 하나만 봐도 세포마을의 분위기를 짐작할 때가 있다. 뮤지컬은 그 익숙한 마음의 움직임을 배우들의 몸짓과 노래로 바꾼다. 사랑세포가 앞장설 때의 들뜬 기운, 불안이 커질 때 다른 세포들까지 휘말리는 소란이 한 공간에서 펼쳐진다. 관전 포인트도 자연히 달라진다. 유미가 무슨 말을 하는지만 따라가기보다, 그 말이 나오기 전 세포들이 어떤 방향으로 유미를 밀고 당기는지 보게 된다.
견습세포 109가 들어오면서 생긴 새 이야기
원작을 알고 있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견습세포 109다. 이름도 역할도 아직 없는 세포가 사랑세포를 동경하며 자기 자리를 찾으려 한다. 익숙한 캐릭터 사이에 낯선 세포 하나를 넣은 셈인데, 이 설정 덕분에 무대판만의 질문이 생긴다. 세포마다 맡은 일이 정해진 마을에서 아직 아무 역할도 없는 존재는 유미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109의 정체는 공연이 남겨 둔 즐거움에 가까워서 여기서는 더 풀지 않겠다. 대신 초반에 109가 다른 세포들을 바라보는 태도와 유미의 선택 앞에서 움직이는 방식을 눈여겨볼 만하다. 구웅과 새이의 관계만 따라가면 연애 이야기로 보이던 장면이, 109를 함께 보면 유미가 자기 마음을 어떻게 대하는지 묻는 장면으로도 읽힌다. 이미 드라마의 전개를 안다는 이유로 무대의 감정선까지 다 안다고 생각하면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다.
귀여운 그림을 노래와 몸짓으로 옮긴 재미
웹툰은 작은 칸 안에서 세포들의 표정을 빠르게 바꿀 수 있고, 드라마는 실사 유미와 애니메이션 세포를 오간다. 무대에는 그런 화면 전환 대신 배우들이 있다. 여러 세포가 동시에 반응하고 움직일 때 유미의 마음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이 살아난다. 혼자 속으로만 하던 고민을 여러 사람이 목소리 높여 말하는 광경이라니, 유미 입장에서는 조금 정신없겠지만 보는 쪽에서는 꽤 신나는 방식이다.
노래도 감정의 속도를 바꾼다. 대사로 짧게 지나갈 수 있는 망설임을 한 곡 동안 붙잡아 두기도 하고, 세포들이 힘을 합치는 장면에서는 말보다 빠르게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예술의전당 공연 정보에 나온 관람 시간은 160분이다. 러닝타임이 짧은 편은 아니어서 촘촘한 사건 전개를 좋아한다면 세포마을 장면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반대로 유미가 선택하기 직전의 복잡한 마음을 보는 게 좋았다면, 그 시간이 이 뮤지컬의 매력으로 다가올 듯하다.
드라마를 좋아했다면 어디에 마음이 갈까
내 취향을 솔직히 말하면 〈유미의 세포들〉은 누가 누구와 이어지는지보다 유미가 자기 감정을 알아차리는 순간에 더 오래 마음이 간다. 그래서 뮤지컬에서도 구웅과 새이 사이의 긴장만 기다리기보다, 그 일로 세포마을의 균형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보는 편이 좋다. 원작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기본 관계를 따라가는 데 큰 장벽은 없지만, 드라마 속 세포들의 말투와 성격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무대의 변화를 비교하는 재미가 하나 더 생긴다.
다만 세포들의 작고 둥근 모습 자체가 가장 좋았던 사람에게는 배우가 연기하는 세포가 처음엔 낯설 수 있다. 그 낯섦을 지나면 보이는 것도 있다. 같은 불안이라도 누가 말하고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유미의 마음이 훨씬 가까이 느껴진다. 내가 이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이유도 결국 거기에 있다. 유미의 머릿속이 유난히 복잡해서가 아니라, 우리 머릿속도 생각보다 자주 저렇게 떠들썩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