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인간 결말까지 보고 나니 사랑보다 집착이 먼저 보였던 후기

오래된 특촬물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멜로가 세더라
얼마 전 1960년대 일본 특촬 영화 이야기를 훑다가 가스인간이라는 제목을 다시 봤는데, 솔직히 처음엔 괴수물 쪽 감성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흐름을 따라가면 은행 강도, 수사극, 변신 인간, 무용수의 무대 복귀가 한 작품 안에 섞여 있어요. 제목만 보면 좀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데, 실제 맛은 꽤 비극적인 멜로에 가깝습니다.
이 글은 원작 영화 가스인간 제1호의 흐름을 기준으로 씁니다. 아래부터는 가스인간 결말을 포함합니다. 아직 끝을 모르고 보고 싶은 분이라면, 초반 분위기까지만 읽고 멈추는 게 좋습니다.
가스인간이 된 남자, 미즈노의 마음은 순애였을까
이야기의 중심에는 미즈노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실험의 결과로 몸을 기체처럼 바꿀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총알도 통하지 않고, 문이나 철창 같은 물리적 장벽도 의미가 없어져요. 은행 금고에 들어가 돈을 훔치는 것도 가능하고, 사람을 질식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그 능력이 단순히 범죄 욕망으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미즈노가 훔친 돈은 후지치요라는 무용수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쓰입니다. 후지치요는 몰락한 집안의 예술가 같은 인물이고, 자신의 무대와 품위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미즈노는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가 다시 춤출 수 있게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근데 이 지점이 참 애매합니다. 겉으로 보면 헌신적인 사랑인데, 그 방식은 범죄이고 폭력입니다. 누군가를 위해서라며 남의 돈을 훔치고 사람을 해치면, 그 마음이 아무리 뜨거워도 관객 입장에서는 불편해질 수밖에 없죠. 저는 이 작품이 그 불편함을 꽤 정직하게 밀고 간다고 느꼈습니다.
후지치요는 피해자인가, 공범인가
후지치요를 보는 시선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미즈노에게 돈을 부탁한 적이 없다고 볼 수도 있고, 적어도 직접 범죄를 지시하는 인물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stolen money, 그러니까 훔친 돈의 냄새를 완전히 몰랐다고 보기에도 어렵습니다. 그녀는 무대에 대한 갈망이 너무 강하고, 그 갈망이 미즈노의 집착과 맞물리면서 사건은 더 위험한 쪽으로 흘러갑니다.
특히 후지치요가 끝까지 공연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는 호불호가 갈릴 만합니다. 누군가는 예술가의 자존심으로 볼 수 있고, 누군가는 현실 감각이 무너진 선택으로 볼 수 있어요. 저는 후자에 조금 더 가까웠습니다. 다만 그 선택이 뜬금없지는 않습니다. 이 인물에게 무대는 생계 이상의 의미이고, 사라진 가문과 자기 존재를 붙드는 마지막 손잡이처럼 보이거든요.
- 미즈노: 사랑을 명분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
- 후지치요: 무대와 자존심을 놓지 못하는 인물
- 경찰과 기자: 초현실적 사건을 현실의 방식으로 붙잡으려는 인물들
가스인간 결말, 불꽃 하나로 끝나는 비극
마지막 공연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강하게 남는 부분입니다. 경찰은 미즈노를 제거하기 위해 극장에 폭발 장치를 준비합니다. 미즈노는 기체가 될 수 있으니 보통 방법으로는 잡을 수 없고, 결국 폭발성 가스를 이용한 계획까지 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계획은 순조롭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회로가 망가지면서 극장을 폭파하려던 시도는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 순간 후지치요는 끝까지 무대를 마칩니다. 그리고 미즈노가 그녀를 끌어안는 순간, 후지치요가 라이터를 켭니다. 그 작은 불꽃이 극장을 폭발시키고, 후지치요와 미즈노, 곁을 지키던 사람까지 함께 사라집니다. 미즈노는 죽음의 순간 다시 인간의 형태로 돌아옵니다. 이 장면 때문에 가스인간 결말은 단순한 처단보다 훨씬 씁쓸하게 남습니다.
후지치요가 라이터를 켠 행동은 여러 방식으로 읽힙니다. 미즈노를 배신한 걸까요. 아니면 자신이 끌어들인 비극을 자기 손으로 끝낸 걸까요. 저는 후자에 더 가깝게 봤습니다. 미즈노의 사랑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사랑이 더 많은 사람을 해치는 방식으로 계속될 수는 없다는 걸 알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봐도 재밌는 건 괴물보다 감정선 때문
특촬 효과만 놓고 보면 지금 기준에서는 당연히 고전적인 맛이 있습니다. 사람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나타나는 장면은 시대를 감안하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감정 구조는 생각보다 오래 버팁니다. 괴물이 된 남자가 있고, 그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고, 그 여자는 사랑과 파멸 사이에서 무대를 선택합니다. 이 구도가 꽤 강합니다.
비슷한 소재의 현대 드라마라면 미즈노의 실험 과정, 후지치요의 과거, 경찰 수사의 디테일을 훨씬 길게 풀었을 겁니다. 원작은 러닝타임 안에서 사건을 빠르게 밀어붙이기 때문에 인물의 빈틈도 보이지만, 오히려 그 압축감 덕분에 마지막 불꽃이 더 선명하게 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괴상한 제목의 옛날 SF로만 넘기기엔 아깝다고 느꼈습니다. 가스인간 결말은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보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 집착이 어디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보고 나면 미즈노가 불쌍하면서도 쉽게 편들 수 없고, 후지치요도 차갑게만 볼 수 없습니다. 그 애매함이 이 영화의 진짜 잔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