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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경 남편 강승식 19일 별세 소식에 다시 듣게 된 ‘춤을 추어요’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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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경 남편 강승식 19일 별세 소식에 다시 듣게 된 ‘춤을 추어요’의 시간

얼마 전 1970년대 가요 무대 영상을 이어 보다가 장은숙의 ‘춤을 추어요’가 다시 귀에 꽂혔는데, 바로 그 곡을 만든 싱어송라이터 강승식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가수 양미경의 남편으로도 알려진 고인은 2026년 7월 19일 새벽 1시께 전북 전주의 병원에서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고, 향년 72세였습니다.

드라마나 예능을 보다 보면 배경음악 하나가 장면의 온도를 확 바꾸는 순간이 있잖아요. 강승식의 이름은 요즘 예능 자막처럼 크게 튀어나오는 이름은 아니었지만, 그가 만든 노래들은 한 시대의 공기와 리듬을 꽤 오래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소식은 단순한 부고라기보다, 한국 대중가요 한 챕터가 조용히 넘어가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가수 양미경이 전한 남편 강승식의 마지막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양미경은 남편 강승식이 패혈증으로 치료를 받다 19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습니다. 빈소는 전북 전주금성장례식장 VIP402호에 마련됐고, 발인은 2026년 7월 21일 오전 9시로 알려졌습니다. 유족으로는 아내 양미경과 3남 1녀가 있습니다.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건 ‘가수 양미경 남편’이라는 소개와 별개로, 강승식 본인 역시 가수·작곡가·제작자·지역 음악 활동가로 길게 살아온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누군가의 배우자라는 호칭이 검색어에서는 먼저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음악 이력은 그 자체로 꽤 두껍습니다.

‘춤을 추어요’를 만든 사람이라는 무게

강승식은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1974년 ‘하루 이틀 사흘’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장은숙의 ‘춤을 추어요’와 ‘당신의 첫사랑’을 작곡하며 작곡가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특히 ‘춤을 추어요’는 1970년대 감성을 말할 때 빠지기 어려운 곡입니다.

요즘 음악 예능에서 옛 노래가 다시 소환될 때가 많습니다. 참가자가 편곡해서 부르거나, 회상형 토크쇼에서 짧게 깔리거나, 부모 세대의 플레이리스트로 등장하죠. 그런 순간에 오래된 곡이 낡아 보이느냐, 아직 살아 있느냐는 멜로디의 힘에서 갈립니다. 강승식의 곡들은 후자 쪽에 가깝습니다. 화려하게 밀어붙이기보다, 멜로디가 기억에 남는 방식으로 사람을 붙잡습니다.

숫자로 보면 더 또렷한 활동의 궤적

  • 1954년 서울 출생
  • 1974년 ‘하루 이틀 사흘’로 데뷔
  • 1978년 장은숙의 ‘춤을 추어요’, ‘당신의 첫사랑’ 작곡
  •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음악 관련 활동
  • 2003년 귀국 후 전주와 삼례 인근에 정착
  • 2026년 7월 19일 패혈증으로 별세, 향년 72세

운동선수에서 통기타 가수로, 꽤 드라마 같은 이력

사실 그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한 편의 음악 다큐처럼 보이는 대목이 많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축구 선수로 활약했고, 아마추어 복싱 선수로도 활동한 이력이 전해집니다. 그러다 명동 음악감상실과 라이브 무대에서 통기타를 들고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운동장에서 무대로 넘어온 셈인데, 이 변화가 꽤 인상적입니다.

드라마 리뷰를 하다 보면 주인공의 전환점이 너무 극적이면 오히려 작위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인생은 가끔 더 과감합니다. 축구와 복싱을 하던 사람이 통기타 가수가 되고, 작곡가가 되고, 제작자가 되고, 다시 지역 음악계에서 활동한다는 흐름은 허구라면 설정이 많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고인은 1980년대 중반 기획사를 세워 음반 제작에도 참여했습니다. 박상규의 ‘역마’, 강영숙의 ‘빈 가슴으로’ 같은 작업이 언급됩니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사람으로 시작해, 다른 가수의 노래를 만들고 음반을 제작하는 쪽으로 넓어진 행보입니다. 대중에게 가장 많이 남은 이름은 작곡가 강승식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역할을 오가며 음악계 안쪽을 오래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투병 이후에도 전주에서 이어간 음악

강승식은 199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가 한인 TV 방송에서 음악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위암으로 수술을 받았고, 2003년 한국으로 돌아와 전주와 삼례 일대에 정착했습니다. 이후 대한가수협회 전북지회장을 지냈고, 전북가수협회와 영호남문화교류협회 설립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이 대목이 저는 꽤 오래 남았습니다. 중앙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만이 음악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지역에서 무대를 만들고, 가수들이 설 자리를 만들고, 문화 교류를 이어가는 일은 방송 화면에는 짧게 잡혀도 실제로는 시간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예능에서 가끔 지역 축제 무대를 보여줄 때, 객석의 어르신들이 한 곡 한 곡에 반응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런 무대 뒤편에도 누군가의 꾸준한 손길이 있습니다.

이 소식이 유독 먹먹하게 느껴지는 이유

강승식의 별세 소식은 자극적인 연예 뉴스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조용한 부고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춤을 추어요’라는 곡명을 보는 순간, 많은 사람에게는 특정한 시대의 풍경이 같이 떠오를 겁니다. 가족이 틀어놓던 라디오, 오래된 음악 프로그램, 회식 자리의 신청곡, 혹은 재방송 예능 속 짧은 배경음악 같은 것들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소식 앞에서 이름보다 노래가 먼저 기억되는 음악인의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그의 이름을 뒤늦게 검색했을 수 있고, 누군가는 양미경의 남편이라는 표현으로 처음 접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결국 남는 건 노래입니다. 1978년에 발표된 멜로디가 2026년에도 다시 검색되고, 다시 재생되고, 다시 누군가의 기억을 건드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 ‘춤을 추어요’를 다시 들으면, 흥겨운 제목과 달리 그 안쪽에 한 음악인이 오래 걸어온 시간이 같이 들릴 것 같습니다.

참고: 연합뉴스, 스타투데이

양미경 남편 강승식 19일 별세 소식에 다시 듣게 된 ‘춤을 추어요’의 시간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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