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산 여대생 살인사건 편을 다시 봤더니, 수사 예능이 더 무겁게 다가온 이유

얼마 전 범죄 수사 예능을 몰아서 보다가, 2004년에 벌어진 가지산 여대생 살인사건 편에서 한참 멈춰 있었다. 이런 사건을 다룬 회차는 단순히 ‘범인이 누구냐’의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가 사라진 시간과 남겨진 사람들이 겪었을 불안까지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건은 2023년 E채널 ‘용감한 형사들3’ 19회에서 다뤄졌고, 2026년 7월 28일 KBS2 ‘스모킹 건’에서도 다시 조명된다고 알려지면서 다시 관심이 커졌다.
처음부터 분위기가 너무 차가운 사건
가지산 여대생 살인사건은 2004년 2월 울산 울주군 가지산 중턱에서 한 2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되며 드러났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는 부산의 한 대학에 다니던 21세 여대생으로, 실종 신고가 접수된 뒤 한동안 행방이 확인되지 않다가 산속에서 발견됐다. 손과 발이 결박된 상태였고, 현장에는 범인을 바로 특정할 만한 단서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수사 예능에서 이 사건이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시작 지점이 너무 막막해서다. 흉기, CCTV, 뚜렷한 목격자가 바로 나오지 않는 상황. 요즘 사건이라면 휴대전화 위치 기록이나 주변 CCTV가 훨씬 촘촘하게 남았겠지만, 2004년이라는 시점을 떠올리면 수사팀이 얼마나 발로 뛰었을지 감이 온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단서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따라가게 되는데, 동시에 피해자의 마지막 시간이 너무 선명하게 상상돼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관전 포인트는 ‘반전’보다 수사의 방향 전환
이 사건을 다룬 예능 기사들은 용의선상에 오른 남성이 20명에 달했다고 소개한다. 피해자의 통화 기록과 주변 관계를 하나씩 확인하는 과정이 길게 이어졌다는 뜻이다. 여기서 자극적인 반전을 기대하고 보면 사실 좀 불편하다. 실제 사건이기 때문에 ‘누가 범인일까’ 게임처럼 소비되면 안 되고, 오히려 봐야 할 지점은 수사가 어떤 기준으로 방향을 좁혀 가는지다.
- 피해자의 마지막 통화와 만남 약속이 어떤 의미였는지
- 주변 인물들의 알리바이가 어떻게 확인됐는지
- 현장에 단서가 적을 때 차량, 행적, 통신 기록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 범행 후 태도와 진술이 수사에서 어떻게 해석됐는지
개인적으로 이런 회차는 범인의 정체보다 형사들이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기까지의 과정이 더 중요하게 보인다. 누군가를 함부로 몰아가면 안 되지만, 놓쳐서도 안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 균형이 수사물의 긴장감을 만든다.
‘용감한 형사들3’식 전달은 강점과 아쉬움이 같이 있다
‘용감한 형사들3’는 실제 수사에 참여했던 형사들이 출연해 당시 흐름을 들려주는 형식이라 몰입도가 높다. 사건의 큰 줄기를 드라마처럼 재현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현장에서 어떤 판단을 했는지 말해주는 부분이 꽤 좋다. 가지산 여대생 살인사건 편도 피해자가 실종된 뒤 발견되기까지의 공백, 주변 탐문, 특정 인물을 좁혀 가는 과정이 비교적 또렷하게 전달된다.
그런데 솔직히 호불호가 갈릴 만한 지점도 있다. 예능 포맷이다 보니 출연진의 리액션이 들어가고, 예고 기사에서도 ‘뜻밖의 범인’ 같은 표현이 사용된다. 시청률을 생각하면 이해는 되지만, 실제 피해자가 있는 사건에서는 단어 하나가 꽤 크게 느껴진다. 나는 이런 회차를 볼 때 자극적인 음악이나 놀라는 장면보다, 피해자의 이름이 익명 처리되더라도 한 사람의 삶이 있었다는 맥락을 조금 더 붙잡아줬으면 하는 쪽이다.
스포를 피하고 보고 싶다면 여기까지만 알고 가도 충분
아직 방송이나 클립을 보지 않았다면, 범인의 구체적 정체와 결정적 증거는 모르고 보는 편이 낫다. 다만 기본 배경은 알고 들어가도 괜찮다. 2004년 2월, 울산 가지산 인근에서 실종됐던 21세 여대생이 숨진 채 발견됐고, 수사팀은 통화 기록과 주변 인물의 알리바이를 좁혀 가며 사건의 실체에 접근했다. 이 정도만 알아도 회차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다.
반대로 이미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시 볼 때 초점을 바꿔보면 좋다. 범인의 말보다 피해자의 동선, 신고 이후 수사의 순서, 형사들이 의심을 검증하는 방식에 집중하면 훨씬 다르게 보인다. 특히 ‘왜 처음엔 수사가 넓게 퍼질 수밖에 없었나’를 생각하며 보면, 단서가 적은 사건에서 관계 수사가 얼마나 고되고 섬세한 일인지 느껴진다.
내가 이 회차를 추천하는 이유
가지산 여대생 살인사건 편은 가볍게 틀어놓고 볼 만한 예능은 아니다. 배경부터 피해 상황까지 마음이 무겁고, 범행 이후의 태도까지 접하면 분노가 남는다. 그래도 수사 예능을 꾸준히 보는 사람에게는 볼 가치가 있는 회차다. 단서가 부족한 사건에서 형사들이 어떤 식으로 사람과 시간을 추적했는지, 그리고 한 사람의 실종이 주변인들에게 얼마나 큰 공포였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참고한 공개 자료는 뉴시스의 ‘용감한 형사들3’ 방송 소개 기사, 뉴스엔의 ‘스모킹 건’ 예고 기사, 동아일보의 2004년 당시 보도다. 원문은 각각 https://www.newsis.com/view/NISX20231229_0002575583 , https://www.newsen.com/news_view.php?uid=202607271502071910 ,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040209/8027870/1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 사건을 다룬 회차를 보면서, 범죄 예능이 재미만 좇을 때 얼마나 쉽게 선을 넘을 수 있는지도 같이 떠올렸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 피해자의 삶을 지우지 않고, 수사의 의미를 따라가며 보는 태도가 이런 실화 기반 프로그램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