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범준 버스킹 영상 다시 봤더니, 박경구라는 이름이 오래 남았다

얼마 전 장범준의 예전 버스킹 영상을 다시 보다가, 화면 한쪽에 있던 이름 하나가 괜히 오래 걸렸습니다. 박경구. 평소에는 장범준의 목소리나 버스커버스커의 청춘 이미지에 먼저 반응했는데, 부고 소식을 접하고 나니 그 시절의 무대가 조금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2026년 2월, 밴드 얼지니티 멤버이자 버스커버스커 초기 버스킹을 함께했던 박경구가 향년 38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고, 유족의 부고와 장범준의 추모 영상이 이어지며 팬들 사이에서도 조용한 애도가 번졌습니다.
버스킹 원년 멤버라는 말의 무게
‘장범준 버스킹 원년 멤버’라는 표현은 짧지만 꽤 많은 장면을 품고 있습니다. 버스커버스커가 대중에게 크게 알려지기 전, 거리에서 노래하고 사람들 반응을 바로 받아내던 시절이 있었죠. 그때의 음악은 완성된 방송용 무대라기보다, 지나가던 사람이 멈춰 서고 친구가 옆에서 코러스를 얹고 악기 소리가 조금 삐끗해도 그대로 살아 있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박경구는 그 초창기 분위기를 함께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순히 ‘옆에 있던 사람’ 정도로 지나가기엔 참여한 흔적이 꽤 선명합니다. 장범준 솔로 1집의 여러 곡 작업에 이름을 올렸고, ‘어려운 여자’, ‘사랑이란 말이 어울리는 사람’, ‘신풍역 2번출구 블루스’ 같은 곡의 작사·작곡·편곡에 참여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또 ‘홍대와 건대 사이’의 원작자로도 언급됩니다. 장범준 음악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제목만 들어도 멜로디가 바로 떠오르는 곡들이라, 그 존재감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장범준 음악에서 박경구가 느껴지는 지점
장범준 노래의 매력은 엄청난 기교보다 생활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하철역 이름, 동네 풍경, 연애의 찌질함, 괜히 말 못 하고 빙빙 도는 마음 같은 것들이 노래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그런 감각은 혼자만의 재능으로만 완성되기 어렵습니다. 같이 듣고, 같이 웃고, 같이 고치고, 같이 무대에 서던 사람들의 감각이 조금씩 묻어납니다.
그래서 박경구의 이름을 알고 나면 장범준의 초기 곡들이 다르게 들립니다. ‘버스킹’이라는 말이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친구들과 버티며 만든 작업 방식이었구나 싶거든요. 특히 ‘홍대와 건대 사이’ 같은 곡은 제목부터 장소 감각이 강합니다. 어느 지역의 공기, 그때의 연애, 걷다가 괜히 떠오르는 말들이 한꺼번에 들어온 느낌이죠. 이런 노래가 오래 남는 이유는 세련됨보다 구체성에 있습니다.
예능 속 버스킹과 실제 버스킹의 차이
드라마나 예능을 오래 보다 보면 ‘버스킹’은 자주 낭만적인 장면으로 소비됩니다. 조명이 예쁘고, 관객은 적당히 감동하고, 노래가 끝나면 관계가 풀리는 식이죠. 물론 그런 장면도 좋습니다. 그런데 실제 버스킹의 결은 조금 더 거칠고 현실적입니다. 소리가 잘 안 들릴 때도 있고, 관객이 그냥 지나갈 때도 있고, 좋은 반응이 와도 다음 무대를 또 준비해야 합니다.
박경구의 별세 소식이 마음에 남는 건, 우리가 사랑했던 어떤 ‘청춘 서사’ 뒤에 실제 사람이 있었다는 걸 다시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버스커버스커의 성공담은 방송과 음원 차트로 기억되지만, 그 전에는 거리에서 같이 소리를 맞추던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 안에 박경구라는 동료가 있었습니다. 예능식으로 편집된 성장담보다, 이런 실제 관계의 흔적이 더 오래 마음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팬들이 다시 꺼내 듣는 이유
장범준은 박경구를 추모하는 라이브 클립 영상을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팬들이 그 영상을 찾아보는 이유도 단순한 호기심만은 아닐 겁니다. 누군가의 삶을 전부 알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이 남긴 노래와 무대는 우리가 가장 조심스럽게 닿을 수 있는 방식이니까요.
- 박경구는 밴드 얼지니티 멤버로 활동했습니다.
- 버스커버스커의 초기 버스킹 시절을 장범준과 함께한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 장범준 솔로곡 작업과 여러 곡의 원작·편곡 참여 이력이 보도됐습니다.
- 별세 당시 향년 38세였고,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이런 소식은 글로 다루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너무 감상적으로 소비하고 싶지도 않고, 반대로 이름만 지나가듯 언급하고 싶지도 않으니까요. 다만 장범준의 음악을 들으며 한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박경구라는 이름이 그 음악의 주변부가 아니라 한 장면을 함께 만든 사람으로 기억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노래는 가끔 사람을 다시 부른다
좋아했던 드라마를 다시 보면 예전에는 주인공만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 조연의 표정이 보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장범준의 버스킹 영상과 초기 노래도 비슷했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한 목소리와 멜로디를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그 옆에서 함께 시간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보입니다.
박경구의 별세 소식은 안타깝고 먹먹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남긴 음악적 흔적을 다시 듣게 만드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장범준 버스킹’이라는 키워드가 단순한 추억 검색어로만 남지 않고, 그 안에 있던 동료와 노래, 그리고 한 시절의 공기까지 함께 떠올리는 이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당분간 장범준의 초기 곡들을 조금 천천히 다시 듣게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