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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로드리고 공연 영상을 틀었다가 끝까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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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로드리고 공연 영상을 틀었다가 끝까지 봤다

드라마 한 편만 보고 자려던 밤에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공연 영상을 틀었다. 노래 몇 곡만 듣고 끄려 했는데, 어느새 끝까지 보게 됐다. 넷플릭스의 2024년 공연 영화 ‘올리비아 로드리고: GUTS 월드 투어’다. 러닝타임은 1시간 44분. 드라마처럼 다음 화를 누를 필요는 없지만, 감정의 흐름을 따라 보다 보면 한 편을 정주행한 기분이 든다. 공연의 큰 장면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사람도 읽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무대 순서와 게스트 장면은 빼고 이야기해 보겠다.

이별 노래만 떠올렸다면 분위기가 꽤 다르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를 ‘drivers license’로 처음 알았다면 조용히 상처를 털어놓는 가수를 예상하기 쉽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이 공연은 속상한 마음을 얌전히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기타 소리가 치고 들어오고, 목소리는 날카로워졌다가 금세 힘을 뺀다. 방에서 혼자 끙끙 앓던 감정을 무대 위로 끌고 나온 느낌이다.

공연은 데뷔 음반 ‘SOUR’와 두 번째 음반 ‘GUTS’의 곡을 함께 들려준다. 두 음반을 이어서 들을 때는 ‘SOUR’ 쪽의 서운함과 ‘GUTS’ 쪽의 짜증, 민망함, 자기비판이 서로 다른 표정을 가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영상에서는 그 차이가 더 또렷하다. 관객이 함께 부르는 순간에는 사적인 일기 같던 노래가 다 같이 외치는 말처럼 커진다.

그래서 이 영상은 히트곡만 빠르게 확인하려는 마음보다, 한 사람이 비슷한 감정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때 더 잘 맞는다. 가사를 전부 알아야 즐길 수 있는 공연도 아니다. 다만 노래 속 화자가 왜 화가 났는지, 왜 방금 전까지 당당하다가 갑자기 작아지는지 따라가면 재미가 훨씬 커진다.

무대보다 표정을 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공연 영화의 장점은 좌석에서 놓치기 쉬운 표정을 가까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큰 소리로 밀어붙이는 대목 뒤에 잠깐 웃거나 숨을 고르는 모습이 잡히면, 노래 속 감정도 한 가지로 들리지 않는다. 화를 내는 듯하다가 스스로 그 모습을 우습게 여기는 순간도 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노래가 내게 재밌는 이유가 여기 있다. 상처받은 사람을 늘 근사하게만 그리지 않는다.

로스앤젤레스 인튜이트 돔에서 촬영한 공연이라 관객의 규모도 화면에 담긴다. 그렇다고 내내 거대한 무대만 보여주는 방식은 아니다. 가까운 화면과 관객석을 오가면서 혼자 노래를 듣는 느낌과 현장에서 함께 소리치는 느낌을 번갈아 준다. 솔직히 이런 편집은 공연 전체를 한자리에서 바라보는 맛과는 다르다. 대신 집에서 볼 때 어디에 눈을 두면 좋을지 안내받는 듯한 편안함이 있다.

내가 가장 오래 붙잡힌 건 화려한 장치 자체보다 곡 사이의 온도 차였다. 신나게 따라 부르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객석의 소리가 잦아든다. 예능에서 한참 웃다가 출연자의 짧은 진심 한마디에 분위기가 달라지는 장면 있지 않나. 이 공연에도 그런 박자가 있다. 그래서 1시간 44분이 같은 크기의 후렴만 반복되는 시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SOUR’와 ‘GUTS’를 알면 더 재밌지만 숙제는 아니다

처음 접한다면 두 음반을 미리 완주해야 할 것 같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drivers license’처럼 감정을 천천히 쌓는 곡과 ‘good 4 u’처럼 답답함을 터뜨리는 곡을 알고 들어가면 출발점으로 충분하다. ‘GUTS’에서는 ‘vampire’의 극적인 흐름, ‘bad idea right?’의 장난기, ‘get him back!’의 복잡한 마음을 떠올려 두면 공연의 폭이 더 잘 들린다. 곡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감정이 한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나는 ‘SOUR’를 들을 때보다 ‘GUTS’의 노래가 나올 때 공연의 장점이 더 잘 보였다. 감정이 예쁘게 다듬어지기 전에 튀어나오는 듯해서다. 하지만 차분한 발라드를 좋아한다면 시끄러운 구간이 조금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반대로 기타 중심의 팝 록을 즐긴다면 조용한 곡에서 잠시 속도가 내려간다고 느낄 것이다. 취향이 갈리는 지점인데, 두 분위기가 번갈아 오기에 끝까지 보는 재미도 생긴다.

공연 영화로 기대할 것과 아쉬운 점

이 작품은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생애를 차근차근 설명하는 다큐멘터리보다 무대에 앉아 있는 경험에 가깝다. 노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투어 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깊게 알고 싶다면 설명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나 역시 곡 사이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었다. 대신 공연의 호흡이 끊기지 않는다는 점은 좋았다. 정보를 메모하기보다 소리를 따라가게 된다.

관객의 함성과 빠른 화면 전환도 호불호가 있을 듯하다. 이어폰으로 가사를 또렷하게 듣는 시간이 더 좋은 사람에게는 정신없을 수 있다. 반면 공연장에 갈 기회가 없었거나, 좋아하는 노래가 무대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궁금했던 사람에게는 반가운 선택이다. 넷플릭스가 소개한 촬영 장소와 러닝타임을 알고 틀었는데도, 화면에서 관객이 함께 노래하는 장면은 예상보다 크게 다가왔다.

나는 이 영상을 보고 나서 ‘SOUR’와 ‘GUTS’의 같은 곡들을 다시 들었다. 처음에는 이별 노래라고만 여겼던 대목에서 웃음이나 객기를 새로 발견했다. 좋은 공연 영상은 좋아하던 노래를 다시 듣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무대는 내게 딱 그런 쪽이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 공연 영상을 틀었다가 끝까지 봤다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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