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1370만 흥행 부담 고백이 유난히 와닿았다

요즘 영화 흥행 소식을 볼 때마다 숫자보다 그 숫자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표정이 먼저 궁금해진다. 지난 3월 18일 방송된 MBC ‘손석희의 질문들4’에 나온 장항준 감독도 그랬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당시 1370만 관객을 넘긴 상황. 축하받기에도 바쁜 자리에서 그는 흥행이 점점 감당하기 버거워진다고 털어놨다. 평소 유쾌한 입담을 떠올리면, 웃음 사이에 섞인 그 말이 더 오래 남는다.
숫자를 챙겨 보는 감독, 옆에서 말리는 배우
이날 방송에서 장항준 감독은 흥행 순위도 꽤 자세히 알고 있었다. 손석희가 관객 수와 순위를 짚자 바로 다음 순위를 받아치는 장면이 웃겼다. 온라인에 올라오는 기록을 자꾸 보게 된다는 말도 숨기지 않았다. 큰 영화가 잘되면 감독은 담담하게 고개만 끄덕일 것 같지만, 좋아서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모습은 오히려 솔직했다.
옆에 앉은 유해진의 반응이 이 대화를 더 재미있게 만들었다. 장 감독에게 이제 관객 수에서 좀 벗어나라고 잔소리한다면서도, 계속 보면 좋으냐고 물으면 좋다고 답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에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 특유의 거리감이 있다. 장 감독의 들뜬 마음을 놀리다가도 너무 큰 관심에 휩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읽힌다.
사실 좋아하는 마음과 부담스러운 마음은 같이 올 수 있다. 장 감독도 좋은 소식은 주변에 나누며 즐겼지만, 관심이 커질수록 유해진이 왜 차분해지자고 했는지 알겠다고 말했다. 1370만이라는 수치는 이날 방송 당시의 기록이다. 이 숫자를 영화의 최종 성적처럼 받아들이기보다, 감독이 처음 겪는 규모의 반응 앞에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보여주는 시점으로 보는 편이 맞겠다.
장항준과 유해진의 대화가 재미있는 이유
‘손석희의 질문들4’에서 두 사람의 호흡은 홍보용 칭찬만 오가는 대화와는 조금 달랐다. 유해진은 장 감독이 대본을 고쳐 보내는 속도와 완성도에 놀랐다는 일화도 들려줬다. 2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인데도 작업자로서 새삼 발견한 면이 있었다는 얘기다. 농담처럼 시작해 영화에 쏟은 시간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좋았다.
장 감독을 둘러싼 반응도 흥미롭다. 그는 관객들이 자신을 직업적인 감독만이 아니라 친근한 사람으로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대 인사에서 감독을 찾는 팬들이 많았다는 유해진의 말도 이어졌다. 작품에 대한 관심과 감독 개인에 대한 호감이 함께 커진 셈이다. 다만 그 친근함 때문에 다음 작품을 향한 기대까지 가볍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듯하다. 방송에서 흥행의 기쁨을 충분히 누리면서도 부담을 말한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나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청령포를 배경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과 그를 맞이한 마을 촌장의 이야기를 그린다. 여기까지가 영화를 고르기 전에 알아도 괜찮을 정도의 설정이다. 역사적 사건을 바탕에 두고 있지만, 관전 포인트는 거대한 권력 다툼만이 아니다. 낯선 처지로 만난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따라가는 데에도 재미가 있다.
유해진이 맡은 엄흥도와 박지훈이 맡은 어린 선왕의 관계가 이 영화의 중심이다. 저는 사극을 볼 때 인물 사이의 감정이 설득력 있게 쌓이는지를 꽤 따지는 편인데, 이 작품을 이야기할 때도 화려한 장면보다 두 사람의 거리 변화가 먼저 떠오른다. 장항준 감독의 익숙한 유머를 기대했다면 뜻밖에 묵직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반대로 무거운 역사극이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는 인물들 사이에서 잠깐씩 생기는 온기가 들어갈 틈을 만들어준다.
호불호가 갈릴 지점도 그 감정의 무게다. 처음부터 끝까지 경쾌한 영화를 기대하거나, 사건의 전개가 빠른 사극을 좋아한다면 후반부의 정서가 진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영화의 구체적인 장면이나 끝을 미리 알고 가는 것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두 인물을 바라보게 되는지 직접 따라가는 편이 더 좋겠다.
흥행 고백 뒤에 남은 얼굴
방송을 보고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건 감독의 순위 계산이나 관객 수 자체가 아니었다. 유해진이 옆에서 들뜬 친구를 슬쩍 말리고, 장항준이 웃다가도 부담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둘의 대화가 영화 밖에서도 ‘왕과 사는 남자’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한 작품을 좋아해 주는 일은 분명 기쁘다. 동시에 다음에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일일 테다.
저는 그날의 장항준 감독이 흥행을 즐기는 모습을 굳이 감추지 않아서 좋았다. 버겁다는 말까지 함께 했기에 더 그랬다. 영화를 이미 본 사람이라면 두 사람의 방송 대화에서 다른 여운을 찾을 수 있고, 아직 보지 않았다면 이 영화가 왜 인물의 감정으로 관객을 붙잡았는지 궁금해질 만하다. 저 역시 다음 작품의 숫자보다, 그때 장항준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할지가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