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렘피카를 찾아봤더니 그림보다 선택이 남았다

공연 소식을 훑다가 뮤지컬 렘피카 포스터 앞에서 한참 멈췄다. 화가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건 작품이라 화려한 그림 이야기부터 떠올랐는데, 작품 소개를 읽을수록 눈에 들어온 건 한 사람이 삶을 다시 꾸려 가는 방식이었다. 전쟁과 망명, 사랑과 야망이 한 무대에 올라온다. 스포일러가 될 만한 선택의 결과는 빼고, 처음 접할 때 눈여겨볼 지점을 적어본다.
화가 타마라가 파리에 도착하기까지
주인공은 실존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다. 뮤지컬은 러시아 혁명의 혼란을 피해 남편 타데우스와 함께 파리로 향한 타마라가 그림으로 생계를 꾸리고 이름을 알리는 과정을 따라간다. 여기에 자유분방한 라파엘라가 등장하면서 타마라의 가족, 사랑, 예술이 서로 부딪히기 시작한다. 어디까지나 실존 인물에게서 출발한 무대 이야기이므로, 모든 장면을 전기 속 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극이 어떤 선택을 강조하는지 보는 편이 좋다.
시대 배경이 거창해서 초반에는 인물 관계가 복잡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따라갈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다. 타마라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가. 처음에는 먹고살기 위한 재능처럼 보이던 그림이 점차 자기 이름을 남기는 수단이 된다. 그 변화가 이 작품의 중심을 잡아준다.
라파엘라는 연애 상대 이상의 인물이다
타마라와 라파엘라의 관계는 눈에 띄는 관전 포인트다. 다만 두 사람을 삼각관계의 한쪽으로만 보면 이야기가 조금 얇아진다. 라파엘라는 타마라가 속한 사교계 바깥에서 살아가는 인물이고, 타마라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림을 그리는 방식과도 맞닿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과 누군가를 작품 속에 담는 일이 같은 뜻일 수 있는지, 그 미묘한 차이가 흥미롭다.
타데우스도 단순히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인물로 보기에는 아깝다. 타마라와 함께 망명을 겪은 가족이자, 달라져 가는 타마라를 가장 가까이서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세 인물의 장면에서는 누가 옳은지 바로 고르기보다 각자가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하는지 살펴보게 된다. 관계의 결말을 몰라도 충분히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림의 분위기를 소리와 움직임으로 옮긴다
타마라 드 렘피카의 그림을 떠올리면 매끈한 표면, 또렷한 윤곽, 아르데코 특유의 도시적인 분위기가 생각난다. 무대에서는 그 인상을 의상과 조명, 인물의 움직임으로 어떻게 바꾸는지가 볼거리다. 그림을 그대로 재현했는지만 찾기보다 타마라가 인물을 바라보는 순간에 무대의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면 더 재미있겠다.
음악은 팝의 감각을 섞어 감정을 크게 밀어 올리는 편이다. 잔잔한 대사극을 기대했다면 조금 벅차게 느껴질 수도 있다. 반대로 인물이 품은 욕망이 노래에서 확 터지는 순간을 좋아한다면 꽤 끌릴 작품이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2024년 막을 내렸고, 국내에서는 2026년 초연 무대가 올랐다. 두 공연의 배우와 연출을 하나의 인상으로 묶기보다는 각 무대가 타마라의 야망과 불안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따로 보는 게 맞다.
화려함이 좋을지, 감정의 밀도가 부담스러울지
솔직히 이 작품은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정치적 격변, 예술가의 성공, 가족과 연인의 관계를 모두 담다 보니 한 장면의 감정을 더 오래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전개가 바쁘게 느껴질 수 있다. 음악도 감정을 절제하기보다 정면으로 터뜨리는 쪽에 가깝다. 섬세하고 조용한 전기극을 기대하면 취향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래도 내 취향에는 그 과감함이 작품의 매력으로 보인다. 아름다운 그림을 남긴 사람을 그저 우아한 천재로 세워두지 않고, 살아남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사람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여성 예술가의 이야기, 시대극 속 복잡한 관계, 힘 있게 치고 올라오는 넘버를 좋아한다면 관심이 갈 만하다. 보고 난 뒤에도 타마라가 어떤 얼굴을 그렸는지보다 왜 그 얼굴을 오래 바라봤는지가 마음에 남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