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쇼츠
한국의 모든이야기

기지시줄다리기축제 찾아보니 진짜 주인공은 줄이었다

Last Updated :
기지시줄다리기축제 찾아보니 진짜 주인공은 줄이었다

예능에서 출연자들이 편을 갈라 줄을 당기는 장면을 보면, 승부보다 그 직전의 표정이 더 재미있을 때가 있다. 기지시줄다리기축제를 찾아보다가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이름만 들으면 거대한 줄다리기 한 판이 전부일 것 같은데, 줄을 만들고 옮기고 사람들이 모이는 과정까지 이어지는 축제였다. 드라마로 치면 마지막 회만 볼 게 아니라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과정을 봐야 재미가 커지는 이야기랄까.

줄 한 판을 위해 50여 일을 쌓아 올린다

당진시 문화관광 안내에 따르면 기지시줄다리기는 충남 당진시 송악읍 기지시리에서 약 500년 동안 이어져 온 민속놀이다. 마을 사람들이 재난을 막고 평안과 풍년을 빌며 함께 줄을 당겼다고 한다. 1982년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2015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그런데 내 눈길을 붙잡은 건 이름표보다 준비 기간이었다. 큰 줄을 만드는 데 약 50일이 걸리고, 제작 과정에 지역 주민들이 참여한다. 화면에 잠깐 등장하는 완성된 줄 뒤에 이렇게 긴 시간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예능에서 단체 미션의 재미가 출연진이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나오듯, 이 축제도 당기는 순간에 앞서 이미 여러 사람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줄의 규모도 숫자로 들으면 좀처럼 감이 안 온다. 당진시가 소개하는 완성된 줄은 전체 길이 약 200m, 무게 약 40t, 지름 약 1m다. 밧줄이라기보다 볏짚으로 만든 거대한 구조물에 가깝다. 한 사람이 붙잡고 힘을 과시하는 장면을 떠올렸다면 실제 모습은 꽤 다르다. 많은 사람이 함께해야 비로소 움직이는 줄이라는 점이 이 축제의 성격을 먼저 말해준다.

내가 고를 첫 관전 포인트는 줄나가기

행사의 흐름을 보면 줄고사, 줄나가기,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줄고사는 큰 줄 앞에서 안녕을 기원하는 절차이고, 줄나가기는 완성된 줄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옮기는 과정이다. 이름만 보면 줄다리기가 단연 주연 같지만, 나는 줄나가기에 먼저 눈이 간다. 40t에 이르는 줄이 사람들의 손을 따라 조금씩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승부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볼거리가 생긴다.

특히 줄나가기는 속도가 빠른 장면을 기대하는 사람과 취향이 갈릴 수 있다. 누가 이겼는지 곧장 드러나는 경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구호와 걸음이 맞아 가는 모습을 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단체 예능의 준비 장면이나 드라마 속 군중 장면을 좋아한다면 이 구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전체 움직임을 보고, 가까이서 줄의 굵기와 짚의 질감을 확인하면 같은 장면도 다르게 읽힌다.

암줄과 수줄이 만날 때 승부의 무게가 달라진다

기지시줄다리기에는 암줄과 수줄이 있다. 각각 길이 약 100m, 무게 약 20t에 이르는 두 줄을 하나로 결합한 뒤 큰 줄다리기가 펼쳐진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어느 쪽이 더 센지만 따지는 경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랫동안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바라며 이어 온 공동의 놀이가 승부의 바탕에 깔려 있다.

그래서 관전 포인트도 조금 달라진다. 줄이 얼마나 이동했는지에만 집중하면 놓치는 장면이 많다. 구호가 한 번에 맞는 순간, 앞사람의 움직임을 보고 뒤사람이 자세를 바꾸는 순간, 구경하던 사람까지 목소리를 보태는 순간이 있다. 스포츠 중계라면 결과를 기다리겠지만, 이 장면은 누가 어떤 마음으로 한쪽 줄에 섰는지 상상하며 보면 훨씬 재미있다.

2026년 축제는 4월 9일부터 12일까지 열렸고, 큰 줄 결합과 줄다리기는 마지막 날인 12일에 진행됐다. 같은 축제 기간이라도 방문한 날에 따라 볼 수 있는 장면은 다르다는 얘기다. 다음 회차를 기다린다면 전체 기간만 보고 일정을 잡기보다, 보고 싶은 행사가 어느 날 열리는지 당진시나 축제위원회 안내를 확인하는 편이 좋겠다.

화려한 공연보다 사람 구경이 좋은 쪽이라면

기지시줄다리기축제에는 전통 줄다리기뿐 아니라 스포츠줄다리기 대회, 공연, 시민이 함께하는 행사도 마련된다. 선택지가 넓은 건 반갑지만, 모든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챙기려 들면 오히려 큰 줄이 움직이는 장면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내 취향이라면 줄나가기와 본 줄다리기를 먼저 고르고, 남는 시간에 다른 무대를 둘러보겠다.

솔직히 빠른 전개와 끊임없는 볼거리를 기대한다면 전통 의례나 큰 줄을 옮기는 시간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도 이 축제에는 그 느린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수십 톤의 줄은 한두 사람의 재주로 움직이지 않고, 마을의 오래된 바람도 한 번의 승패로 끝나지 않는다. 예능에서 출연자 한 명보다 팀 전체의 호흡이 오래 남는 회차가 있듯, 기지시줄다리기축제도 결국 함께 당기는 사람들의 장면이 가장 궁금해진다.

기지시줄다리기축제 찾아보니 진짜 주인공은 줄이었다 - 요약
기지시줄다리기축제 찾아보니 진짜 주인공은 줄이었다 | 코리아쇼츠 korshort : https://korshort.com/2281
한국의 모든이야기
코리아쇼츠 © korshort.com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modoo.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