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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불암 별세 소식에 전원일기를 다시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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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불암 별세 소식에 전원일기를 다시 틀었다

며칠 전 배우 최불암 별세 소식을 보고 한동안 리모컨을 들고 망설였다. 어린 시절엔 가족이 켜 둔 TV에서, 커서는 내가 골라 본 드라마와 교양 프로그램에서 늘 만나던 얼굴이다. 결국 <전원일기>를 다시 틀었다. 몇 장면만 보려던 마음과 달리 대사 사이의 침묵까지 오래 보게 됐다. 익숙한 배우의 빈자리가 이렇게 크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박 반장과 김 회장을 연기한 시간이 남긴 것

MBC와 KBS의 보도에 따르면 최불암은 2026년 10월 29일 밤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오랫동안 건강 소식이 전해졌지만, 막상 별세 소식을 확인하고 나니 실감이 다르다. 드라마 속 인물이자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여러 세대의 일상에 들어와 있던 배우였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작을 꼽으면 단연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다. <수사반장>에서는 박영한 반장으로 약 18년, <전원일기>에서는 양촌리 김 회장으로 1980년부터 2002년까지 22년을 보냈다. 한 배역을 몇 년만 맡아도 배우와 인물이 겹쳐 보이기 쉬운데, 이 정도 시간이면 시청자의 기억 속에서 함께 나이를 먹은 셈이다. 그래서 작품 제목만 들어도 특정한 장면보다 최불암의 표정과 목소리가 먼저 떠오른다.

수사반장은 사건보다 사람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수사반장>을 지금 다시 보면 요즘 범죄 드라마에 익숙한 눈에는 전개가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빠른 편집과 반전을 기대한다면 특히 그렇다. 그런데 그 느린 호흡 덕분에 박 반장이 사건 앞에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보인다. 단서를 찾는 장면만큼 동료와 호흡을 맞추고 상대의 말을 듣는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2024년 <수사반장 1958>에서 이제훈이 젊은 박영한을 연기했을 때도 재미는 그 연결에 있었다. 같은 이름의 인물이 세월을 건너 어떤 얼굴이 되었는지 떠올리게 하니까. 최불암이 출연한 장면은 옛 작품을 아는 시청자에게 반가운 만남이다. 아직 두 작품을 모두 보지 않았다면 어느 쪽부터 시작해도 괜찮다. 다만 새 드라마의 빠른 리듬을 기대하며 원작을 틀면 처음엔 조금 낯설 수 있다. 원작에서는 범인을 쫓는 속도보다 박 반장이 서 있는 자리를 보는 쪽이 더 재미있었다.

전원일기의 김 회장은 다정하기만 한 아버지는 아니다

내가 다시 튼 <전원일기>는 더 묘했다. 어릴 때는 김 회장이 그저 든든한 어른처럼 보였다. 지금 보니 가족과 마을의 중심에 있는 만큼 그가 하는 말이 주변 사람에게 큰 무게로 닿는다. 정이 가는 순간도 있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그 두 감정이 함께 드는 게 이 드라마를 다시 보는 맛이다.

1980년에 시작해 2002년에 끝난 드라마라 생활 방식이나 가족 안의 역할은 지금과 거리가 있다. 옛날 이야기라며 편하게 웃다가도 어떤 장면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솔직히 모든 갈등이 내 취향에 맞지는 않는다. 그래도 김 회장을 늘 옳은 사람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선택에 동의하지 않는 날에도 최불암이 대사를 건네는 방식은 계속 보게 된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장면에서도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이 느껴진다.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다면 줄거리 검색부터 하기보다 한 회를 온전히 보는 편이 좋다. <전원일기>의 관전 포인트는 큰 사건의 결과보다 밥상 앞에 앉은 사람들의 말투와 표정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다. 처음에는 긴 방영 기간이 부담스럽겠지만,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 한 편에서 시작해도 그 집의 분위기는 충분히 전해진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들리던 목소리까지

드라마 밖에서도 최불암은 오래 곁에 있었다. KBS에 따르면 그는 2011년부터 2025년까지 14년 동안 <한국인의 밥상>을 이끌었다. 지역의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내게 오래 남은 건 음식 이름보다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이야기를 기다리던 호흡이다. 한 상이 차려지기까지의 시간을 듣고 나면 화면 속 음식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드라마 정주행이 부담스럽다면 이 프로그램의 한 편을 먼저 보는 것도 좋겠다. 박 반장이나 김 회장을 몰라도 최불암의 목소리가 왜 많은 사람에게 친숙했는지 느낄 수 있다. 반대로 그의 연기를 더 보고 싶다면 <수사반장>의 박영한과 <전원일기>의 김 회장을 나란히 만나 보길 권한다. 정의감 있는 형사와 한 가족의 어른은 서로 다른 인물인데, 둘 다 사람을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별세 소식을 듣고 다시 본 <전원일기>는 예전보다 조금 천천히 흘렀다. 내 눈이 달라진 탓일 수도 있다. 다음에는 <수사반장>의 오래된 화면을 틀어 볼 생각이다. 수십 년이 지나도 다시 보고 싶은 장면이 남아 있다는 것, 그게 내가 기억할 배우 최불암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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