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의 츠가이 성우를 따라가다 보니 장면이 달라졌다

성우진을 확인하고 다시 초반부를 보니, 처음엔 그냥 지나쳤던 대화가 다르게 들렸다. <황천의 츠가이>는 산속 마을에서 살아온 유르의 일상이 갑자기 흔들리면서 시작하는 작품이다. 낯선 인물과 ‘츠가이’라는 존재가 잇따라 등장하니 이름을 외우기도 바쁜데, 목소리에 익숙해지면 인물 사이의 거리감부터 조금씩 잡힌다. 여기서는 애니플렉스가 공개한 일본어판 배역을 기준으로, 초반 설정을 넘는 이야기는 아껴두고 싶다.
유르와 아사, 남매인데 말의 온도가 다르다
유르 역은 오노 켄쇼, 쌍둥이 여동생 아사 역은 미야모토 유메다. 유르는 산에서 사냥하며 살아온 소년이다. 갑작스러운 일을 겪을 때도 마냥 소리부터 지르는 인물은 아니라서, 오노 켄쇼의 차분한 말투가 잘 맞는다. 상황을 다 이해하지 못한 채 움직여야 하는 순간에도 목소리가 지나치게 앞서가지 않는다. 나는 그 점 때문에 유르가 더 궁금해졌다. 조용하다고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말을 고르는 사이에도 계속 생각하는 사람처럼 들린다.
아사의 목소리는 같은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만든다. 미야모토 유메는 짧게 말을 주고받을 때도 아사가 유르와 똑같은 시간을 보낸 사람은 아니라는 느낌을 남긴다. 남매라는 설정만 보고 비슷한 호흡을 기대했다면 오히려 이 차이가 재미있을 수 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에 따라 대화의 무게가 달라지는 작품이라, 아사의 사정을 미리 찾아보지 않고 듣는 편이 좋았다. 표정만 볼 때보다 목소리까지 들을 때 마음을 읽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데라와 가브짱이 나오면 대화가 확 살아난다
데라로도 불리는 타데라 류는 나카무라 유이치가, 가브짱은 쿠노 미사키가 맡았다. 데라는 유르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부터 여유가 느껴지는 인물이다. 나카무라 유이치의 낮고 편안한 목소리를 듣다 보면 일단 설명을 따라가게 되는데, 그렇다고 그의 말을 전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게 되지는 않는다. 아는 게 많아 보이는 사람의 말투와 지금 말하지 않는 게 있을 듯한 분위기가 함께 간다. 유르와 붙는 장면에서 그 차이가 특히 잘 들린다.
가브짱은 등장만으로 장면의 공기를 바꾼다. 쿠노 미사키의 높은 목소리가 처음엔 귀엽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인상만 붙잡고 있으면 금방 당황할 수 있다. 밝은 소리와 거침없는 행동 사이의 간격이 이 캐릭터의 재미다. 솔직히 나는 가브짱을 볼 때마다 다음 대사가 어떤 톤으로 나올지 먼저 기다리게 됐다. 다만 폭력적인 장면에 예민하다면 초반부터 취향이 갈릴 수 있다. 아기자기한 캐릭터가 나오는 가벼운 판타지를 기대하고 틀었다면 분위기가 꽤 다르다.
좌우 님은 ‘한 쌍’이라는 설정을 목소리로 보여준다
유르 곁의 츠가이인 오른쪽은 코야마 리키야, 왼쪽은 혼다 타카코가 연기한다. 이 배역은 이름을 외우고 나면 듣는 재미가 더 커진다. 한 쌍으로 움직이지만 두 목소리를 같은 성격으로 들리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오른쪽의 넉넉하고 힘 있는 울림과 왼쪽의 단단한 응답이 오갈 때, 둘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 귀에도 또렷해진다. 화면에서 두 존재를 보는 재미에 대사의 박자가 더해지는 셈이다.
이 작품에는 츠가이가 여러 모습으로 등장한다. 처음부터 능력이나 관계를 외우려 들면 조금 복잡할 수 있는데, 좌우 님의 대화를 따라가면 ‘짝’이라는 설정이 훨씬 쉽게 와닿는다. 설명을 길게 듣는 것보다 두 목소리가 번갈아 들리는 짧은 순간이 더 기억에 남았다. 초반에 인물이 많아 부담스럽다면 유르와 좌우 님의 대화부터 귀 기울여도 좋겠다.
조연 목소리까지 익숙해질수록 보는 맛이 붙는다
단노 하나는 시마부쿠로 미유리, 카게모리 진은 스와베 준이치가 맡았다. 카게모리 아스마 역의 이시다 아키라와 요사노 이반 역의 미키 신이치로도 공식 성우진에 이름을 올렸다. 이름만 보면 화려한 캐스팅인데, 누가 주인공 편인지부터 분류하며 들으면 이 작품 특유의 묘한 관계를 놓치기 쉽다. 특히 진처럼 말투가 단정한 인물은 그 말투가 주는 첫인상과 실제 행동을 함께 지켜보는 편이 재미있다. 나는 새 인물이 나올 때 성우 이름을 확인하되, 인물 설명은 뒤로 미뤄두는 쪽이 더 잘 맞았다.
아라카와 히로무 원작을 좋아해서 보기 시작했다면 성우진도 반가운 관전 포인트가 될 만하다. 하지만 <황천의 츠가이>의 목소리는 유명한 이름을 찾는 재미에서 끝나지 않는다. 유르가 누구의 말을 듣고 잠시 멈추는지, 아사의 짧은 대답이 왜 오래 남는지, 좌우 님의 한마디에 장면이 왜 조금 가벼워지는지 따라가게 한다. 내 취향에는 사건의 답을 빨리 확인할 때보다 그런 대화의 간격을 느끼며 볼 때 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