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램프 전시회 소식을 보고 다시 작품을 펼쳤다

얼마 전 책장에서 《카드캡터 체리》를 다시 꺼냈다가, 그림 한 장 때문에 페이지를 한참 넘기지 못했다. 어릴 때는 화려한 의상과 마법에 먼저 눈이 갔는데, 지금 보니 인물의 표정과 여백이 더 오래 남는다. 서울에서 열렸던 클램프 전시회 소식을 떠올리며 전시 구성을 찾아보니, 왜 여러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홍대에서 만난 전시는 어떤 구성이었을까
서울 전시의 이름은 ‘CLAMP展 -SELECTION-’이었다. 2026년 4월 16일부터 7월 19일까지 홍대 AK플라자 4층 오뮤지엄에서 열렸고, 현재는 종료됐다. 멜론티켓에 안내됐던 당시 입장료는 성인 2만 2천 원, 청소년·어린이 1만 8천 원이었다. 날짜를 확인하지 않고 예전 예매 정보를 보고 찾아가면 헛걸음하기 쉬운 전시다.
이름에 붙은 ‘SELECTION’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2024년 도쿄에서 열린 클램프 전시를 그대로 옮긴 행사가 아니라, 그 전시를 바탕으로 꾸린 순회전이다. 제작위원회 설명에 따르면 작품 보존을 위해 전시 원고는 복제본을 기본으로 했고, 구성도 개최 장소에 맞춰 일부 달라졌다. 도쿄 전시의 원화 수나 규모를 서울 전시에 그대로 적용해 말할 수는 없는 이유다. 원본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던 팬이라면 이 차이가 꽤 크게 느껴졌을 듯하다.
작품보다 먼저 보이는 건 클램프의 공통된 감각
클램프를 한 작품으로만 기억하기는 어렵다. 《카드캡터 체리》의 밝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xxxHOLiC》의 기묘한 공기나 《도쿄 바빌론》의 무거운 감정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좋아하는 작품마다 보는 마음이 달라서, 이들을 한 전시 안에서 어떻게 묶었을지가 궁금했다.
서울 전시는 COLOR, LOVE, ADVENTURE, MAGIC, PHRASE라는 다섯 주제를 중심에 두고, 활동의 흐름을 따라가며 만화를 볼 수 있는 IMAGINATION과 전시를 위해 새로 그린 컬러 그림을 소개하는 DREAM을 더한 일곱 구역으로 구성됐다. 작품별로 방을 나누는 방식과는 감상이 조금 다르다. 같은 작가 집단이 그린 색과 관계, 모험과 말의 장면을 여러 작품에 걸쳐 비교하게 되니까. 줄거리를 전부 기억하지 못해도 ‘이 선과 분위기, 익숙하다’ 하고 멈출 지점이 생긴다.
드라마를 정주행할 때도 비슷한 순간이 있다. 회차마다 사건은 달라지는데, 어느 순간 인물들이 반복해서 붙드는 감정이 보이는 때 말이다. 클램프 작품에서도 화려한 판타지나 의상 뒤에 관계를 바라보는 특유의 시선이 느껴진다. 밝은 작품만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어두운 작품의 그림 앞에서 예상보다 오래 서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보는 사람과 오래된 팬의 관전 포인트
처음 클램프를 접했다면 등장인물의 관계를 모두 이해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다섯 주제 가운데 먼저 눈길이 가는 그림을 고르고, 그 그림이 어느 작품에서 왔는지 확인하는 편이 덜 부담스럽다. 《카드캡터 체리》를 좋아했다면 색과 의상을, 《xxxHOLiC》가 취향이었다면 화면의 분위기와 짧은 문구를 따라가는 식이다. 여기서는 반전이나 인물의 운명을 풀어놓지 않겠다. 아직 작품을 읽거나 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재미가 더 크니까.
오래된 팬에게는 다른 재미가 있다. 예전에 지나쳤던 장면의 표정이 눈에 들어오고, 작품이 달라도 비슷한 감정이 되풀이된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반대로 좋아하는 작품 한 편의 자료를 깊게 파고들고 싶었다면 주제별 구성은 다소 아쉬웠을 수도 있다. 여러 작품을 가로질러 보여주는 전시인 만큼, 각 작품의 줄거리를 자세히 설명해 주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복제 원고 중심이라는 점 역시 취향이 갈릴 만하다. 종이의 질감이나 실제 작업 흔적을 기대했다면 아쉽겠지만, 클램프의 폭넓은 그림과 표현을 한 흐름에서 비교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전시의 구성 자체가 관전 포인트가 된다. 내 취향도 특정 장면의 비밀을 듣는 쪽보다는, 익숙한 작품을 다른 눈으로 다시 보는 쪽에 가깝다.
전시가 끝난 뒤 다시 펼치고 싶은 책
서울 클램프 전시회는 이미 막을 내렸다. 그래도 전시를 계기로 작품을 다시 고른다면 시작은 거창하지 않아도 좋겠다. 좋아했던 만화 한 권을 펼쳐 색과 표정을 천천히 보는 것만으로도 어릴 때 놓친 부분이 보인다. 다음에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 보면, ‘이것도 클램프였지’ 싶은 연결이 생길 수 있다.
나는 《카드캡터 체리》의 따뜻한 장면을 보다가 《xxxHOLiC》의 낯선 화면으로 건너갈 때 그 차이가 재미있다. 한쪽만 좋아해도 괜찮고, 다른 쪽은 끝내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여러 작품을 같은 작가의 이름 아래 다시 놓아 보게 했다는 점이, 이 전시 소식에서 가장 오래 남는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