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관계 중 5천만원 현질 남편 사연에 멈칫했다

예능을 보다 보면 자극적인 자막에 먼저 눈이 갈 때가 있다. JTBC ‘이혼숙려캠프’ 83회의 가지 부부 이야기도 그랬다. ‘부부관계 중 5천만원 현질 남편’이라는 말만 보면 한순간에 거액을 결제한 것처럼 읽히지만, 방송에서 나온 이야기는 다르다. 아내가 말한 5천만 원은 남편이 여러 해 동안 게임에 쓴 것으로 추정한 누적 금액이고, 부부관계 중에는 남편이 게임을 확인했다는 사연이다. 두 이야기가 한 줄에 붙자 더 놀라운 제목이 된 셈이다.
그런데 내용을 나눠서 들어도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이 부부의 갈등은 게임을 얼마나 좋아하느냐보다, 함께 있어야 할 때 서로를 얼마나 외롭게 만들었느냐에 가까워 보였다. 여기서는 방송에서 드러난 장면과 발언을 중심으로, 이후 선택은 밝히지 않고 이야기해 보려 한다.
5천만 원보다 먼저 걸린 건 휴대폰을 보는 순간
21기 첫 번째로 소개된 가지 부부는 세 아이를 키우며 가지 농사를 짓고 있다. 아내는 남편이 둘째 출산을 앞둔 때에도 게임을 했고, 부부관계 중에도 휴대폰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같은 게임이라도 퇴근 후 혼자 즐기는 시간과 배우자가 도움이나 교감을 바라는 순간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이 대목은 ‘게임을 너무 오래 한다’는 불평으로 들리지 않았다.
아내 입장에서는 출산 때의 기억과 둘만의 시간에 느낀 서운함이 겹쳐 있었을 것이다. 화면을 한 번 봤느냐 몇 번 봤느냐를 따지기 전에,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자기보다 게임에 더 마음을 쓰는 듯한 경험이 반복됐다는 게 중요해 보였다. 솔직히 나도 그 장면에서는 소비 금액보다 아내가 그 순간을 아직 또렷하게 기억한다는 사실이 더 오래 남았다.
그렇다고 방송의 짧은 장면만으로 남편에게 의학적인 의미의 게임 중독이라는 진단을 붙일 수는 없다. 다만 취미가 가족과 보내는 시간까지 밀어내고 있다는 아내의 호소는 가볍게 넘기기 어려웠다.
현질은 취미 비용일까, 가족 안에서의 우선순위일까
5천만 원이라는 숫자도 물론 크다. 남편은 게임 안에서는 그 정도를 쓴 사람이 대단한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게임을 하는 사람끼리 비교하면 나올 수 있는 이야기다. 근데 가족이 듣고 싶은 답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부가 함께 사는 데 필요한 돈을 어떻게 나눠 쓰고 있는지, 아내가 생활비를 걱정하는 동안 결제가 계속됐는지가 먼저였으니까.
JTBC가 공개한 83회 장면에는 게임 결제와 모임 비용을 둘러싼 갈등, 생활비가 부족하다는 아내의 이야기가 함께 나온다. 아이들을 위해 아내가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도 소개됐다. 이 흐름을 보고 나면 현질은 단순히 ‘비싼 취미’로만 남지 않는다. 같은 집에서 한 사람은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은 좋아하는 일에 계속 돈을 쓸 수 있다고 느끼는 차이가 보인다.
물론 방송에 나온 누적 금액만으로 가계 전체를 계산할 수는 없다. 농장 운영비나 빚 같은 사정도 등장한다. 그래서 남편의 수입과 지출을 몇 장면만 보고 단정하기보다, 왜 아내는 생활비를 걱정하면서 남편의 게임 결제를 뒤늦게 알게 됐는지에 눈이 갔다. 돈의 액수만큼이나 돈 이야기를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이 커 보였다.
가지 부부의 과거를 듣고 분위기가 달라졌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아내는 학생이었고 남편은 학교 교직원이었다. 아내는 19세에 첫아이를 임신했다고 밝혔다. 지금의 다툼을 보기 전에 이 출발점을 듣게 되니, 두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가정을 시작했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어린 나이에 양육을 시작한 아내가 그동안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 방송이 짧게 보여준 말들만으로는 다 알 수 없다.
이 대목은 시청하는 사람마다 가장 불편하게 느낄 지점이 다를 것 같다. 누군가는 게임 결제에 화가 나고, 누군가는 학생과 교직원으로 만난 과거에서 이미 마음이 무거워질 수 있다. 나 역시 후자였다. 그렇다고 현재의 모든 갈등을 과거 한 장면으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오래 쌓인 관계일수록 각자의 말과 행동을 더 차분히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에는 아내의 행동을 둘러싼 갈등도 함께 나온다. 그래서 어느 한쪽을 완벽한 피해자나 악역으로 만들어 보는 방식은 이 사연과 잘 맞지 않는다. 다만 양쪽 이야기를 듣는 것과, 아내가 말한 출산·양육 시기의 외로움을 흐리는 것은 다른 일이다.
끝까지 보게 만든 건 자극적인 제목 밖의 이야기
‘이혼숙려캠프’는 강한 자막과 빠른 장면 전환으로 시선을 붙드는 예능이다. 가지 부부 편도 휴대폰과 현질 이야기가 워낙 세서 다른 장면이 묻히기 쉽다. 하지만 조금 천천히 보면 농장 일, 세 아이의 돌봄, 반복되는 모임과 집안일이 모두 한 부부의 시간 안에 얽혀 있다. 서로가 바쁘다고 말하는 동안 누가 집에서 무엇을 맡아 왔는지를 보는 편이 훨씬 흥미로웠다.
스포일러 없이 관전 포인트를 꼽자면 두 가지다. 남편이 자신의 게임 시간을 설명할 때 아내가 호소한 외로움에도 답하는지, 그리고 생활비 이야기가 나왔을 때 두 사람이 같은 가계의 현실을 보고 있는지다. 큰 소리가 오가는 장면보다 이런 대화의 어긋남이 관계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이 편을 편하게 웃으며 정주행할 예능으로 권하기 어렵다. 특히 출산과 어린 나이의 양육 이야기가 마음에 걸릴 수 있다. 그래도 자극적인 제목 뒤에 어떤 일상이 쌓여 있었는지 보고 싶다면 기억에 남을 회차다. 나는 5천만 원이라는 숫자보다, 가까이 있어야 할 순간에 혼자라고 느꼈다는 아내의 말이 더 오래 남았다.
